저는 된장찌개는 좋아합다만, 청국장은 못 먹습니다. 아니 굉장히 싫어하는 편입니다.
아마 대다수 사람들이 같은 이유로 싫어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제가 청국장을 싫어하는 이유는 다른 것 없어요. 냄새.
이 특유의 꼬리꼬리한 안 씻은 듯한 냄새 때문에 어릴적에도 집에서 청국장 끓이면 입에도 안 댔으며
회사 구내식당 같은 곳에서도 청국장이 국으로 나오면 국 안 푸고 밥과 반찬만 먹을 정도로 기피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이상하게 된장찌개만큼은 거부감이 없어 대접밥 위에 된장찌개 담아 쓱쓱 말아먹는 건 완전 좋아하지요.
그런 제가 몇 년 전, 처음으로 제 돈을 내고 제 의지로 청국장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요,
바로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한국출장편에 나왔던 전주의 '토방' 이라는 식당이었습니다.
거기서 판매하는 청국장은 다른 곳과 달리 특유의 구린 냄새가 없고 엄청 구수한 맛이 일품이라 이런 청국장도 있구나
이런 청국장이라면 나도 먹을 수 있겠다 - 라고 생각하며 청국장에 대한 고정관념을 날려버린 것은 물론
좋아하는 된장찌개 못지않게 맛있게 먹었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토방 : http://ryunan9903.egloos.com/4425736)
그로부터 약 3년 반 후, 제 의지로 두 번째 청국장을 먹으러 가는 대 사건(?!)이 있었는데요,
바로 하남시 춘궁동 쪽에 위치한 '시어머니 청국장' 으로 가 보고 싶다 하는 분이 계셔서 함께 찾아가보게 되었습니다.
대지가 상당히 넓은 편.
넓은 마당 옆에 본관 건물이 있고 무인 카페로 운영하는 별관 가건물이 따로 있어요.
본관 근처에 전시되어 있는 항아리.
실내로 들어왔는데 들어오자마자 저렇게 칸막이가 있어 순간 당황...;;
주방 안쪽에서 직원 나왔는데 방이 있다고 방으로 안내를 해 주었습니다.
방 쪽으로 안내 받아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방이 전부 이어져 있긴 합니다만 저렇게 칸막이가 있어 옆 테이블과는 차단이 되더군요. 실내는 약간 어두운 편.
가게 대표 메뉴는 '시어머니 한상' 이라고 합니다.
기본 정식에 황태구이, 더덕구이, 보쌈, 그리고 손두부가 추가되는 메뉴로 2인 이상 주문이 가능합니다.
그밖에 단품메뉴를 따로 추가할 수 있고 시어머니 정식이 아닌 별도 식사 메뉴도 있습니다.
이 경우 보쌈, 황태, 더덕구이 등의 요리가 나오지 않는 그냥 단품 식사라고 하더군요(오른쪽)
시어머니 정식 주문시 약초밥, 뽕잎밥, 곤드레밥, 쌀밥 네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고 합니다.
가격은 그리 저렴하다고 할 순 없지만, 요새 한정식 같은 거 먹으려면 보통 이 정도 돈은 줘야하니까.
닭백숙과 오리백숙도 판매하긴 합니다만, 하루 전에 미리 예약을 해야만 주문 가능하다고 하는군요.
주류 가격은 다른 곳과 엇비슷한 편.
하얼빈맥주를 따로 메뉴판에 집어넣은 게 조금 특이합니다.
갈치속젓이 반찬으로 따로 나오는데, 이건 워낙 맛이 독특해서 필요한 사람만 직원에게 요청해달라는군요.
아마 기본으로 나오는데 안 먹고 남겨서 버려지는 게 많아 이렇게 따로 빼 놓은듯.
차, 그리고 솥밥 누룽지에 붓는 뜨거운 물이 담긴 주전자.
앞접시와 기본 식기 세팅.
메인 식사가 나오기 전, 에피타이저 개념으로 몇몇 요리들이 먼저 제공됩니다.
드레싱을 뿌린 양배추, 양상추 샐러드가 나오는데 가볍게 식사 전 입맛 돋우기 좋습니다. 맛은 예상이 가는 맛.
잡채는 미리 만들어 식고 불어있는 게 아닌 바로 무쳤는지 기름지고 따뜻하더군요.
구색맞추기로 대충 내놓은 게 아닌 제대로 만든 단품 요리라는 느낌.
갓 부친 배추전.
뭘 넣어 반죽해서 이런 노란빛을 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특별한 재료 들어간 것 없이
그냥 배추 하나만 넣고 지져내었는데 묘하게 맛있네요. 강원도 시장에서 보는 배추전과는 모습이 좀 다르긴 해도
이거 꽤 맛있었습니다. 따로 간장 찍어먹지 않아도 간이 잘 맞았고요.
에피타이저가 나온 뒤 슬슬 메인 메뉴로 넘어가기 시작.
손두부, 보쌈, 그리고 보쌈김치가 한 접시에 담겨 나왔습니다.
지방과 살코기 비율이 적당하게 잘 삶아진 돼지고기 보쌈.
보쌈김치와 무말랭이 두 가지가 한 접시에 함께 담겨나온 모습.
보쌈 맛있게 잘 삶았네요.
바로 이전 포스팅에서 엄청 가성비좋은 보쌈정식 먹고 왔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https://ryunan9903.tistory.com/1400) 여기가 가성비로 훌륭한 곳이라면 이 곳의 보쌈은 퀄리티로 아주 좋은 편.
그리고 여기 보쌈김치가 적당히 단맛이 잘 배어있고 견과류 등도 들어가
고기와 함께 먹기 잘 어울렸습니다. 같이 간 분들 모두 보쌈 괜찮다고 상당히 만족해하던...
두부도 좋았습니다만, 인당 하나씩 나오는 건 좀 적지 않나 싶은 생각.
인당 한 덩어리 정도만 더 많았으면 좋겠군요...^^;;
두부와 보쌈을 먹고 난 뒤, 이런저런 반찬이 하나둘 깔리기 시작합니다.
쌈야채, 그리고 각종 양념장. 간장 바로 왼편에 담겨있는 게 갈치속젓.
갈치속젓 되게 맛이 특이해요. 발효된 특유의 톡 쏘는 맛이 확 올라오니 저건 정말 먹을 수 있는 사람만 주문하시길...
갈치라고 해서 갈치구이라든가 갈치조림 같은 거 생각하시면 안 되고 오징어젓, 명란젓같은 것과 맛이 완전히 다름;;
묵은지.
황태구이와 더덕구이.
매장에서 직접 만든 여섯 종류의 나물이 한 접시에 세 종씩 따로따로 담겨 나왔습니다.
솥밥을 그릇에 옮겨담은 뒤 비빔밥으로 만들어먹어도 좋을 것 같은데, 저는 약초솥밥을 시켜 비빔밥은 못 만든...
나물들 간이 대체적으로 세지 않고 슴슴하게 무쳐져 부담없이 즐길 수 있습니다.
두부조림.
봄동겉절이.
파래무침.
알감자조림.
도라지무침.
콩비지.
무와 함께 넣고 끓인 고등어조림.
그리고 대망의 메인요리라 할 수 있는 '청국장' 이 일단 도착했는데요...;;;
사실 청국장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냄새가 심하면 어쩌지... 하며 되게 큰 걱정을 했습니다만
보기와 달리 의외로 '어, 냄새 안 나네...?'
청국장 특유의 엄청 구린 냄새가 나지 않을까 했는데 의외로 별다른 냄새가 안 나서 이건 먹을 수 있겠다 싶더군요...;;
솥밥도 도착했습니다.
솥 안에 검은콩, 대추, 찹쌀 등을 넣고 약초물에 지어 약간 거무튀튀한 색을 띠는 약초밥이 들어있습니다.
네 종류의 밥 중 어떤 것 먹을까 하다 여기서만 먹을 수 있는 독특한 메뉴 같아 선택해봤는데 진짜 독특하긴 하네요.
여튼 밥은 옆의 공기에 덜어놓은 뒤 뜨거운 물 부어 뚜껑을 다시 덮어놓았습니다.
청국장은 앞접시를 이용해서 먹을 만큼...
앞서 이야기했듯 제가 청국장 진짜 안 좋아하거든요. 이유는 순수하게 그 악취 때문에...
그래서 살면서 내 의지로 청국장 먹으러 간 게 이번이 두 번째이고 청국장을 맛있게 먹은 게 인생에서 단 한 번,
전주 토방에서 먹은 청국장이 유일하다시피한데 이 청국장이 두 번째로 맛있게 먹은 청국장이 될 것 같습니다.
청국장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냄새는 거의 없었고 구수한 콩의 맛만 느껴졌습니다. 거기다 전혀 맵지 않았고요.
보통 청국장 하면 새빨갛게 끓여 살짝 얼큰한 맛도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제가 본 점위 안에서는)
여기서 끓인 청국장은 색도 된장에 가까운 색이었고 얼큰한 맛 대신 구수한 맛만 느껴집니다. 이 정도면 먹을 수 있음...!
황태구이와 더덕구이는 예상 가는 맛.
한정식 먹을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메뉴고 저도 일단 나오면 잘 먹긴 합니다만, 일부러 추가하진 않습니다.
사실 어딜 가나 정말 못 만들지 않는 이상 거의 비슷비슷한 맛이 나게 상향평준화된 것 같아요.
고등어조림 맛있더군요. 집에서 고등어조림 먹을 땐 등푸른생선 특유의 비린내가 물컹물컹한 식감 때문에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매장에서 먹는 고등어조림은 비리지 않고 양념도 아주 잘 배어있어 기름진 맛이 좋았어요.
뭐 때문에 매장에서 먹는 것과 집에서 먹는 것의 차이가 이렇게 나는지 조금 궁금하다는 생각도...ㅋㅋ
밥 다 먹은 뒤 뚜껑 연 누룽지.
누룽지로 깔끔하게 입가심까지 완료.
가기 전 걱정이 많이 들었으나 생각보다 냄새가 별로... 아니 거의 안 나서 된장찌개 먹는것과 비슷했던 청국장.
그리고 청국장 이외에도 이런저런 한식 반찬들이 여럿 나와서 꽤 맛있게 먹을 수 있었던 시어머니 청국장의 정식.
이런 곳이 다 그렇지만 여기도 어른들 모시고 가면 꽤 좋아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밥집이었습니다.
청국장을 싫어하는데 억지로 찾아갈 것까진 없지만, 그래도 청국장을 한 번 먹어보고 싶다면 찾아가볼 만 합니다.
그동안 익히 생각하기 쉬운 냄새나는 청국장에 고정관념이 있다면 그 고정관념을 깨 줄만한 음식을 맛볼 수 있습니다.
저도 태어나서 두 번째로 제 의지로 맛있게 먹었던 청국장이라 이 정도면 또 먹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으니...
밖에 나가보니 고추장아찌라든가 청국장 등의 매장에서 직접 만든 재료도 따로 포장 판매를 하더군요.
집에서 즐기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나갈 때 하나씩 사 가도 좋을 듯. 다만 저는 일부러 사갈 정도는 아니지만...
식당 본관 옆에는 비닐하우스로 지은 '커피한잔의 여유' 라는 작은 무인 카페가 있는데요,
식사를 한 뒤 따로 카페같은 곳으로 이동할 필요 없이 여기서 커피 한 잔 하고 가라고 만든 건물인 듯 합니다.
건물 중앙에 난로 하나가 있고 그 위에 국화차가 담겨 있는 주전자가 하나 있습니다.
겨울철에는 난로 주변에 모여앉아 차 한 잔 즐기는 것도 나름 낭만적이겠군요.
그리고 의외로 실내 공간이 꽤 넓은 편이라 여러 사람끼리 와서 모여앉아도 괜찮습니다. 깔끔한 카페만큼은 아니지만...
왼쪽은 자판기 믹스커피, 오른쪽은 에스프레소 머신.
바로 옆에 다회용 컵과 일회용 컵이 따로따로 비치되어 있어
취향에 따라 원하는 컵을 집어 커피 또는 전통차 등을 자유롭게 즐기면 됩니다. 별도 요금은 받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공예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군요.
뭔가 이런 것 전시되어 있는 분위기를 보면 젊은 층보다는 5060 장, 노년층을 겨냥한 분위기가 아닐까 싶은...
고추장, 된장, 명이나물 같은 것도 따로 판매하고 있다고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음... 그러면 만 100살 이상 노인이 여기 오면 담배 피워도 괜찮은 것이려나(...)
노년의 지혜.
블로그에 이런 사진 올라오는 거 보면 제 블로그도 첫 시작 때와 달리 나이가 든 게 아닌가 느껴지는 편(...)
식당 주변에 건물이 거의 없다시피하고 식당 진입로도 굉장히 좁은 편이라
밤만 되면 식당에서 켜 놓은 조명 외엔 아무것도 없어 굉장히 어둑어둑한 편. 낮에 오면 분위기가 어떨지 궁금하군요.
여튼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꽤 맛있게 먹었던 하남 춘궁동의 '시어머니 청국장' 이었습니다.
보통 이런 곳은 차 끌고 찾아오는 경우가 많으니 관심있으신 분은 한 번 가족들과 차 끌고 가 보시는 것도 좋을 듯...
※ 시어머니 청국장 찾아가는 길 : 경기 하남시 이성로41번길 217(하남시 춘궁동 88)
2022. 3. 2 // by RYUN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