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블로그 오래 봐 주신 분들이라면 익히 잘 아시겠지만 저는 돈까스를 아주 좋아합니다.
사실 돈까스 하면 일식, 경양식, 분식 할 것 없이 가리지 않고 다 환장하긴 합니다만, 그 중 가장 좋아하는 걸 꼽으라면
단연 소스 듬뿍 부어 칼질해 먹는 경양식을 으뜸으로 삼고 있습니다. 거기에 역사와 전통 있는 분위기의 가게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지요. 그리고 이런 조건을 갖춘 가게를 소개받으면 너무 멀지 않을 시 호기심에 직접 방문해보곤 합니다.
이번에 방문한 석촌동의 '오로라' 라는 경양식도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의 소개를 통해 호기심을 갖고 방문했어요.
이 동네에서 약 30년 전통을 갖고 있는 경양식 전문점으로 위치는 잠실역과 석촌역,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30년 전통이라면 1990년대에 영업을 시작한 가게. 흔히 추억의 경양식 하면 8~90년대를 일컬으니 조건에 부합하는군요.
연식이 오래 된 흰 벽돌의 상가 건물.
그 건물 1층에 큼직한 고딕체로 '오로라 경양식' 이라고 써 있는 엄청 투박한 간판. 여긴 짭레트로가 아닌 찐레트로...;;
간판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만으로도 복고 유행에 따라 재현한 가짜 레트로가 아닌 진짜라는 걸 보여줍니다.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발견한 건 '티파니에서 아침을' 의 배우, 오드리 헵번의 포스터.
그리고 매장 내부 곳곳에 세워져 있는 수많은 화분에 은은한 조명, 목조 바닥까지... 와 여기는 진짜다...ㅋㅋ
외벽에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각 지역과 이름이 적혀 있는 액자가 걸려 있습니다. 이 가게의 역사를 담은 액자에요.
1970년대엔 중구 소공동에서 '멕시코' 를, 1980년대엔 강남구 압구정동의 '모멘트' 와 '채플린',
그리고 1990년대는 강남구 삼성동 '추억만들기' 를 거쳐 현재는 석촌동에서 '오로라' 라고 하는 가게로 이어지는 거라고...
테이블에 기본으로 놓여 있는 손소독제와 3종의 소스통.
소스 종류는 왼쪽부터 차례대로 우스터 소스, 타바스코 소스, 그리고 후추통.
직물로 만든 테이블보 위에 매장에서 직접 끓여 식힌 보리차, 그리고 식기류를 준비했습니다.
어우, 메뉴판 케이스 장미 문양 뭐야...ㅋㅋ 메뉴판부터 분위기가 남다른...!
대표메뉴인 돈까스는 8,000원. 그리고 좀 더 매콤한 소스 맛의 '멕시칸 돈까스' 가 가게의 대표 메뉴인 듯.
멕시칸 돈까스의 '멕시칸' 만 빨간 색으로 인쇄되어 있습니다.
그 외에 함박스텍, 비프(비후)까스, 오무라이스, 정식 등 경양식집에서 맛볼만한 메뉴는 전부 구비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하우스와인도 판매하고 있어요. 잔당 판매도 가능하니 원하시는 분은 식사와 함께 주문해도 될 것 같습니다.
술 손님을 위한 안주 메뉴도 있으니 참고하세요.
돈까스와 생선까스도 식사용이 아닌 안주용 메뉴가 따로 있습니다.
물수건을 달라 요청하니 이렇게 종지에 담아 내어주셨습니다.
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 계시고 서빙하는 젊은 직원분이 계셨는데 젊은 직원분 되게 친절하고 좋았습니다.
아주머니는 뭐랄까... 친절하면서도 약간 오랜 경양식집 특유의 관록이 느껴지는 서빙이라고 해야 할까...ㅋㅋ
식전 수프. 후추 살짝 뿌려서 가볍게 입맛을 돋우는 용도.
메인 돈까스가 나오기 전, 아일랜드 드레싱을 뿌려 마무리한 양배추 샐러드가 나왔습니다.
양배추는 흰 양배추와 적양배추를 섞어 담아내었더군요.
양배추 샐러드 이후 기본 반찬과 함께 메인 요리인 돈까스가 나옵니다.
경양식집에서 돈까스 시킬 땐 이렇게 전체샷으로도 꼭 한 번 찍는 게 예의(...?)
기본찬으로 나온 할라피뇨 고추 장아찌와 단무지.
그리고 좀 잘게 깍둑썰기하여 담근 깍두기가 나옵니다.
여기 깍두기 진짜 좋았어요. 그 엄청 맛있다기보단 경양식 돈까스와 가장 이상적으로 궁합이 잘 맞게 담궈진 맛이었거든요.
경양식 특유의 '접시에 얇게 펴서 나온 밥' 이 나왔습니다.
밥 양이 적긴 합니다만, 밥은 모자라면 추가요금 없이 더 주니 양 많은 분들도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듯.
제가 주문한 돈까스는 가게의 간판메뉴, '멕시칸 돈까스(9,000원)'
넓은 접시 위에 소스를 부은 경양식돈까스, 그리고 가니쉬... 라고도 불리는 사이드가 함께 담겨 나옵니다.
돈까스는 경양식의 정석답게 얇게 펴서 튀겨낸 고기, 그 위에 건더기가 있는 소스를 넉넉하게 얹어내어 마무리했습니다.
돈까스에 곁들이는 가니쉬... 그러니까 사이드로는 블랙 올리브와 마카로니 샐러드, 그리고 볶은 양파까지 총 3종.
올리브나 마카로니야 다른 데서 맛볼 수 있는거라 치더라도 볶은 양파라니... 여기는 진짜다! 라는 느낌이 또 들었던 순간.
돈까스 소스에 매운 고추 덩어리가 있으니(멕시칸돈까스 한정) 먹을 때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이게 매운맛을 내는 원천인 것 같군요. 다만 막 죽을 정도로 매운 건 아니고 딱 먹기 좋을 정도의 매콤함이라 좋네요.
소스 되게 좋습니다. 너무 맵고 자극적이지 않고 딱 경양식 돈까스의 표준을 보여주는 되게 깊이 있는 소스 맛이에요.
돈까스 자체는 경양식답게 두툼함보다는 얇게 편 왕돈까스에 가깝긴 합니다만, 사실 소스 맛이라...^^;;
두툼하고 육즙 흘러넘치는 일식 돈까스에 익숙한 분들이라면 성에 안 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경양식 돈까스 좋아한다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일단 이 소스 스며들어 살짝 눅눅해진 촉촉함이 되게 좋네요.
살짝 케찹 맛이 감도는 은은하게 달콤한 볶은 양파. 이런 경양식에서나 맛볼 수 있는 것 중 하나지요.
양 자체는 적긴 합니다만, 메인 돈까스 못지않게 훌륭한 임팩트를 남기기에 부족함 없었습니다.
보통 경양식집 하면 식사를 마친 후 후식으로 '커피, 녹차, 콜라, 사이다' 중 하나를 선택해 서비스로 제공되긴 하지만
오로라의 경우 그 후식이 따로 제공되진 않아요. 대신 커피와 탄산음료를 2,000원에 판매하고 있어 가격 부담이 적은 편.
기본 돈까스가 8,000원으로 타 경양식집에 비해 가격이 조금 낮은 편이라 커피 더해도 1만원에 해결되는 셈.
식사 마치고 커피 한 잔 마셔보기 위해 커피를 한 번 주문해 보았습니다. 2,000원 커피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기도 하고...
. . . . . .
와우......;;;
오로라경양식의 '헤이즐넛 원두커피(2,000원)'
헤이즐넛 향이 물씬 풍겨나는 원두커피가 화려한 꽃 문양의 찻받침 위 찻잔에 담겨 티스푼과 함께 서빙되었습니다.
와, 이 찻잔 분위기 진짜 이거 완전 찐 레트로...ㅋㅋ
화려한 금색 모양의 통이 함께 나왔는데요...
금색 통 안에는 황설탕이 들어있어 취향껏 커피에 설탕을 넣어 마실 수 있습니다.
이 헤이즐넛 원두 커피는 설탕 없이 마시는 것보다 설탕 조금 넣어 달달하게 마시는 게 훨씬 맛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원래 설탕 없는 커피를 즐기는 편이지만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설탕을 넣을 때가 있거든요. 그게 바로 이런 경우.
다음에 여기 또 오게 되면 그 때는 커피 무조건 시켜야겠네요...ㅋㅋ
요즘 평범한 카페에서 맛보기 힘든 굉장히 레트로한 분위기와 맛을 지닌 꽤 귀한 헤이즐넛 원두커피라 더 좋았습니다.
일행 중 한 명이 조금 늦게 도착해서 저 커피 마실 동안 식사를 했어요.
저와 똑같은 '멕시칸돈까스(9,000원)' 를 시켰는데, 1인 기준으로 돈까스 시키면 수프 포함 이렇게 나온다고 보면 됩니다.
단돈 1만원 미만의 가격에 이렇게 놓고 먹으니 뭔가 풀 코스로 대접받는 기분. 이게 경양식이 가진 매력이라고 봐요.
영업 시간은 저녁 8시 30분까지. 저희가 식사 마치고 나올 때가 거의 마감시각이었는데, 마감한다는 안내가 붙어있네요.
방문 전 미리 연락해봤는데 대충 8시 이전까지 가면 식사가 가능한 듯 하니 궁금하신 분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일단 재방문 의사는 매우 높은 집이었고요, 다음에 방문하게 되면 '포크 스테이크' 를 한 번 먹어보고 싶어요.
쇠고기 스테이크나 함박 스테이크야 국내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지만 '돼지고기 스테이크' 는 어떨지 진짜 궁금하거든요.
가게 앞에서 롯데월드 타워를 이렇게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요즘 미세먼지 없이 깨끗한 하늘이라 정말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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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로라경양식 찾아가는 길 : 지하철 2,9호선 석촌역 7,8번출구 하차, 송파구 백제고분로39길 33 1층(석촌동 161-12)
2022. 9. 19 // by RYUN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