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 첫 11일짜리 장기여행, 2023년 11월 타이완 전국일주
(113) 작은 호의가 만들어 준 또 하나의 기적같은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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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좀 전까지 나는 카발란 위스키 공장 앞 버스정류장에서 이란역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지금은 어떤 승용차에 타고 있다...;;;
갑자기 누군가에게 납치당했냐고?
납치를 하려면 좀 돈이 많아 보이거나 혹은 어린 사람을 납치해야지 나 같은 아저씨를 납치해서 어디 쓰겠다고 납치하겠어;;;

상황은 이렇다.
카발란 증류소를 나와 버스 정류장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공장 안에서 차량 하나가 나오더니
갑자기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내 앞에 서는 것이었다. 그래서 뭐지? 하고 있는데 이내 그 멈춘 승용차의 창문이 열렸다.
그 안에는 대충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성 한 명이 운전대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뜬금없이 나한테 '이 차에 타라' 는 제스처를 보이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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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순간 머릿속에 엄청난 물음표가 그려지면서 짧은 찰나의 시간동안 여러 가지 생각이 다 들었는데
그 남성, 내가 살짝 경계하는 모습을 본 뒤 잠깐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앱을 열어 뭔가를 쓰는 것이었다. 그 앱은 언어 번역 앱.
이내 번역기를 통해 뭔가를 다 쓴 그는 자신의 핸드폰을 나한테 내밀었는데 거기엔 대략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다.
'여기 버스 한참 기다려야 한다. 퇴근하는 길이니 이란역까지 데려다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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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버스 정류장에는 버스가 곧 도착한다고 하는데 이 사람은 여기서 버스 타려면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누구 말이 맞는걸까... 버스가 맞을까, 아니면 이 사람이 말이 맞을까...? 짧은 찰나의 순간동안 누굴 신뢰해야 할지 한참 망설였는데
결국 나는... 이 남자의 말을 믿고 일단 한 번 타 보기로 했다.
...사실 이게 올바른 행동은 아니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위험한 행동인데, 순간 타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이유는 세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차량이 커다란 밴이 아닌 조그만 승용차였고 그 안이 지저분하지 않고 꽤 깔끔한 상태로 정리가 잘 되어있었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차가 도로를 달리다 갑자기 날 보고 멈춘 게 아니라
'카발란 증류소 공장' 에서 나오는 걸 내 눈으로 확실히 봤다는 것. 그래서 공장 근무자라는 신분이 확실하게 보장되었다는 것.
마지막으로 차량 안에는 나와 비슷한 덩치와 연배의 남성 한 명만 있었고 다른 사람은 전혀 없었다는 것.
그래도 약간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살짝 남아있었지만 운전자는 전혀 경계심이 없이 무심한 듯 역을 향해 운전을 하고 있었고
차에 탄 뒤 비록 번역기를 통한 대화였지만 어느 정도 대화를 통해 이 경계심을 완전히 풀 수 있었다.

무사히 '이란역(宜蘭車站)' 에 도착.
이란역에 도착한 이 남자는 도착했다고 말하며 이제 내려도 된다고 말해줬다. 아, 진짜 날 데려다주려 한 호의였구나...
겉으로 티는 안 냈지만 혹시나 잘못된 게 아니었을까 내심 경계하고 있었던 내 모습이 살짝 부끄러워지면서
순수한 호의로 나를 역으로 데려다 준 이 남자가 고마워 '나중에 카발란 홈페이지를 통해 당신을 꼭 칭찬해주고 싶다' 라는 말을
번역기를 통해 전해주며 당신의 이름을 묻고 싶다 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내 그 분은 자신의 이름을 답해주었는데
나중에 그 이름을 확인해보려 하니 그건 실제 이름이 아닌 약간 그... 우리나라의 '철수, 영희' 같은 예명 같은 걸 알려준 것이었다.
아마 본인의 행동을 그렇게 알리고 싶지 않아 진짜 이름을 알려주지 않은 것으로 추측. 그래도 탔던 차량 번호는 기억하고 있어
마음만 먹으면 그 호의를 홈페이지 쪽에 알려서 칭찬을 해 주고 싶었지만 본인이 그걸 원하지 않는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마음 속으로 감사함을 갖는 걸로 끝내기로 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 블로그를 통해 그 때의 일을 한 번 풀어보는 게 전부.
아마 그 분이 이 블로그의 글을 보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크게 상관은 없다.
그 분이 보시든 안 보시든 약 1년 전, 카발란 증류소에서 버스 기다리는 나를 이란역까지 아무 대가나 목적 없이 데려다 준
그 직원분의 호의에 대단히 감사드리며 이 작은 호의에 대한 기억은 '카발란 증류소' 방문에 대한 기억을 기분 좋게 추억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앞으로도 행복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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뤄둥역으로 가장 빠르게 돌아갈 수 있는 열차는 17시 53분에 출발하는 특급열차 '쯔창하오'
그 뒤로 56분에 출발하는 구간차도 있긴 하지만 나는 특급열차를 타고 조금이라도 더 빨리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그 이유는 이란 - 뤄둥간의 거리가 고작 10km 정도로 워낙 거리가 짧아 특급열차와 구간차의 요금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
이 구간의 구간차 요금은 15NT$(약 620원), 특급열차 쯔창하오의 요금은 23NT$(약 950원)'
소요시간은 구간차 15분, 쯔창하오는 겨우 6분.
이 정도 가격차와 소요시간 차이라면 그냥 먼저 오는 것 타고 먼저 도착하는 게 훨씬 낫지...

대합실과 승강장까지는 거리가 다소 있는 편이라 이 긴 지하 터널을 지나야 한다.

지상 승강장에 도착 후 반대편 승강장을 한 컷.
이란역이 근처 상권이라든가 위치상으로 보면 뤄둥역보다 더 중요한 역이긴 하나 역 규모는 뤄둥보다 좀 더 작게 느껴졌다.

'이란(宜蘭)역' 기둥형 역명판.

타이완의 일반 철도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전부 고상홈 대응으로 승강장이 지어져서인지 얼핏 전철 승강장 같기도 하다.
실제 구간차는 전철과 똑같은 롱 시트로 운행하고 있으니 사실상 뭐... 통근형 전철이라 보는 게 맞는 걸지도 모르지.

뤄둥으로 돌아가는 열차 도착.
이번 차량은 쯔창하오 등급으로 운행하는 열차 중 가장 오래 된 1996년 도입 차량인 'E1000' 전동차.
이 차량의 객차를 제작한 곳은 무려 대한민국의 '현대정공(현 현대로템의 전신)' 이라고 한다.

차량 시트에 타이완 관광 마스코트인 '오숑' 이 있다. 얘 처음엔 별로였는데 보다보니 정들어서 지금은 참 좋단 말야...

차량 내부는 우리나라의 무궁화호와 상당히 유사한 느낌. 꽤 많은 것들이 무궁화호와 매우 닮았다는 것을 느낀다.

객차 뒷칸에 좌석 없이 넓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 유모차라든가 휠체어 등을 고정하는 자리 아닌가 싶기도 하다.
벨트가 따로 마련되어 있고 음료 받침대가 있는 걸 보아 원래 좌석이 있던 것을 떼어놓은 것 같음.

이란에서 뤄둥까지 이동하는 데 걸린 시간은 대략 6분 남짓.
바로 다음역이 뤄둥역이라 좌석에 앉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내릴 준비를 해야 한다.

'뤄둥역(羅東車站)' 귀환.
저녁 시간대인데 학생들 비롯해서 꽤 많은 사람들이 승강장에 나와있었다. 아까 전 낮에 내릴 때와는 또 다른 분위기구나...

2층 대합실을 통해 다시 출구로 내려간다.

밤의 뤄둥역 앞 광장.
다른 큰 거점역들과 달리 사실 여긴 광장이라 할 만한 공간이 거의 없고 바로 앞에 회전교차로가 하나 있고
그 뒤로 시내 도로가 쭉 펼쳐져 있는 형태다. 저 앞으로 쭉 직진해서 가면 내가 묵는 호텔이 나온다.


호텔 카드 열쇠 인증. 내가 묵는 방은 708호.

7층 호텔 복도를 지나...

다시 내 방으로 되돌아왔다.

일단 땀이 많이 났어... 샤워부터 좀 하고 지금 기운이 하나도 없으니 뭐라도 먹으러 나가야지...
생각해보니 오늘 내가 점심을 아예 먹질 않았다. 어쩐지 기운이 하나도 나지 않았는데 이유가 다 있었다. 와 진짜 힘드네;;

정확히 읽지는 못하겠지만 객실에 기본 비치되어 있는 유료 어매니티(차, 과자)들의 가격 안내인 것 같았다.
처음엔 무료로 제공되는 건 줄 알았는데 역시... 이런 것들은 따로 돈을 받는구나. 딱히 꼭 먹고싶은 건 없어 결국 건드리지 않음.
= Continue =
2024. 9. 30 // by RYUN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