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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국내여행 이것저것

2022.2.16. 설 연휴, 눈 덮인 창덕궁(昌德宮), 그리고 창경궁(昌慶宮) 당일치기 여행(스크롤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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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 연휴, 코로나19로 인해 친척들이 모이지 않았습니다만 그렇다고 하루종일 집에만 있긴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간단하게 서울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정작 서울에 가깝게 살면서 단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창덕궁(昌德宮), 그리고 창경궁(昌慶宮)을 다녀왔는데요, 때마침 이번 설엔 눈이 많이 와서 평소의 모습과는 다른

눈으로 새하얗게 뒤덮인 조선 고궁의 모습을 보고 올 수 있었던 꽤 괜찮은 시간이었어요.

창덕궁과 창경궁은 서로 맞닿아 붙어있고 창덕궁 후원으로 가는 방향에 두 궁궐을 서로 이어주는 문이 있어

자연스럽게 하나의 동선으로 두 궁궐을 구경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창덕궁 매표소.

 

 

창덕궁 입장료는 성인 3,000원.

65세 이상은 경로 요금이 적용되어 신분증을 제시하면 무료 입장이 가능합니다.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敦化門)'

교화를 돈독하게 한다는 의미를 지닌 문으로 궁궐 대문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왕의 행차 등의 의례가 있을 때 사용했던 문이라고 합니다.

 

 

돈화문을 지나 도선문 안으로 들어가면 궁궐 전각이 있는 창덕궁 안에 들어서게 됩니다.

 

 

창덕궁의 중심 건물인 인정전으로 들어가는 입구, '인정문(仁政門)'

 

 

국보 제 226호로 지정된 '창덕궁 인정전(仁政殿)'

인정전의 인정(仁政)은 어진 정치를 뜻하는 한자어인데, 이 곳은 창덕궁의 정전으로 왕의 즉위, 신하들의 하례,

그리고 외국 사신의접견 등 중요한 국가적 의식을 치르던 곳이었다고 하는군요. 조선 효종, 현종, 숙종, 영조 등의

임금이 이 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하고 왕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1405년 태종 5년에 건립되었으나 수차례 소실을 거쳐 현재는 1803년, 순조 3년에 소실된 것을 이듬해 복원했다는군요.

 

 

눈이 꽤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나들이 온 사람들이 은근히 많았습니다. 역시 설 연휴 때문이었을까 싶어요.

원래 명절 기간에 고궁은 항상 무료 개방을 했지만, 작년,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그 행사는 하지 않았습니다.

 

 

'창덕궁 선정전(宣政殿)'

정교(政敎)를 선양(宣揚)한다는 뜻을 지닌 선정전은 왕과 고위직 신하가 일상 업무를 보던 공식 집무실이라 합니다.

아침 조정회의와 업무보고, 그리고 오늘날의 국정 세미나와 비슷한 경연 등의 각종 회의가 이곳에서 매일 열렸다는군요.

역시 임진왜란, 인조반정 등으로 소실을 거쳤으나 1647년, 인조 25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창덕궁 대조전(大造殿)'

큰 공업(功業)을 이룬다는 뜻을 지닌 대조전은 왕비가 거주하던 생활공간으로

대조전 가운데 흥복헌(興福軒)은 1910년 마지막 어전회의를 열어 경술국치가 결정되었던 비극의 현장이라고 합니다.

내부 중 일부는 윗 사진에 찍은 희정당과 함께 서양식으로 개조되었으며 왕실생활의 모습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눈으로 하얗게 뒤덮인 창덕궁.

오히려 맑은 날이 아닌 눈이 많이 내렸던 날에 온 덕에 평소엔 보지 못했던 풍경을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긴 창덕궁 후원(後苑)으로 들어가는 입구인데요, 아무나 들어갈 수 없게 출입로가 막혀 있습니다.

후원은 왕실 정원으로 창덕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가지고 있는 구역이라고 하는군요. 비원이라고도 합니다.

 

 

다만 이 곳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제한 관람 구역이라 반드시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예약을 하여야만 하며

자유 관람이 아닌 단체 관람으로 일정 인원이 다함께 들어가야만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창덕궁을 가면서 후원 예약도 하려 했는데, 설 연휴라 당연한 것이겠지만 후원은 이미 예약이 꽉 차 버린 상태.

그래서 이렇게 후원 입구에 서서 들어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야만 했습니다. 뭐 다음에 갈 일이 있겠지요...^^;;

 

 

후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바로 오른편에 작은 문이 있는데요, 저 문을 통해 들어가면 창경궁(昌慶宮)과 연결됩니다.

물론 창경궁의 정문은 아니고요,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은 성균관대, 서울대학교 병원 근방에 따로 있습니다.

이 곳은 창덕궁과 후원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쪽문 역할을 하는 함양문.

 

 

창경궁의 입장료는 천원으로 창덕궁에 비해 상당히 저렴한 편.

이 곳에서 입장권을 구매한 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창경궁(昌慶宮)은 대한민국 사적 제 123호로 지정된 조선시대 궁궐로

1418년 조선 3대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양위한 후 상왕으로 거처하기 위해 지어졌다고 합니다.

건립 당시 이름이 수강궁(壽康宮)이었는데, 세종이 부왕인 태종의 만수무강과 평안을 바란다는 뜻으로 지었다는군요.

이후 9대 성종이 세조의 왕비이자 할머니인 정희왕후, 생모이자 대비인 소혜왕후, 8대 예종의 계비 안순왕후를

모시기 위해 1483년~1484년 사이 대대적인 확장, 창성하고 경사스럽다는 뜻의 '창경(昌慶)'으로 고쳐지었다고 합니다.

 

 

창덕궁은 일제강점기 당시 '창경원(昌慶苑)' 이라는 이름의 동물원이자 유원지로 강제 개조되었던 역사가 있습니다.

궁궐 내부의 전각 일부를 철거한 뒤 그 자리에 일본식 정원과 건물을 세우고, 창경궁을 '창경원(昌慶苑)'으로 개명,

해방 이후에도 계속 창경원이란 이름의 유원지로 운영되다 1983년, 일본식 정원과 건물을 철거한 뒤 복원 과정을 거쳐

1986년, 창경원은 다시 창경궁으로 되돌아와 대중에 개방되어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지금도 나이가 있는 사람들은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많으며 저희 부모님도 어릴 적

가족들과 함께 창경원으로 나들이를 갔던 기억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동물들 있던 자리도 다 기억하시던...!!

 

 

성종태실 및 태실비.

성종의 태를 묻어놓았던 태실과 그 제작과 수리 기간을 적은 태실비라고 합니다.

 

 

눈 덮인 창경궁의 큰 연못, '춘당지(春塘池)'

1909년, 창경원으로 바뀔 때 일본인들이 만든 연못을 1986년,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할 때 재조성했다고 합니다.

 

 

국가 보물로 지정된 팔각칠층석탑.

 

 

창경원으로 격하되어 유원지로 운영되던 시절, 일본인들이 지었던 일본식 정원과 동물원 시설은

창경궁으로 복원할 당시 전부 철거하였습니다만, 유일하게 이 대온실만큼은 철거하지 않고 보존이 해놓았습니다.

1909년에 지어진 창경궁의 대온실은 현재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국내 자생 식물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나무 껍질이 새하얀 특이하게 생긴 소나무가 있는데, '백송' 이라고 불린다는군요.

조선시대 중국을 다녀온 사신들이 가져온 솔방울을 심은 것이 자라 여기저기 퍼져 있는 품종이라고 합니다.

 

 

정궁과 후원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 창덕궁과 달리 창경궁은 정원과 건물이 한데 어우러져 있어

후원을 따로 떼어놓고 비교한다면 창덕궁보다 창경궁의 풍경이 더 탁 트이고 보기 좋다는 인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생각할수록 후원 신청을 못 한 것이 많이 아쉽네요.

 

 

'영춘헌(迎春軒)과 집복헌(集福軒)'

영춘헌은 정조가 자주 머물렀던 장소이자 49세 나이로 승하한 곳으로 이 곳을 독서실 겸 집무실로 이용하였다고 합니다.

 

 

'양화당(養和堂)'

‘조화로움을 기른다‘는 뜻을 갖고 있는 양화당은 내전의 한 공간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인조가 병자호란 후 남한산성에서 돌아와 이곳에서 장기간 머물렀다고 하는데요, 현재 남아있는 양화당은

1830년(순조 30년)에 화재로 불탄 것을 1834년(순조 34년)에 재건한 것이라고 합니다.

 

 

양화당 앞에서 발견한 오리 한 쌍.

 

 

왕비의 침전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는 '통명전(通明殿)'

 

 

모든 전각 앞에는 이렇게 해당 전각의 명칭과 설명이 4개 국어로 표기되어 있어

전각의 유래와 역사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왕대비, 세자 등이 머물렀던 '경춘전(景春殿)' 은 햇볕 따뜻한 봄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경춘전의 글씨는 순조의 어필(글씨)이라고 하는군요.

 

 

'환경전(歡慶殿)'

기쁘고 경사스럽다는 뜻을 지닌 환경전은 세자나 국왕이 생활하던 공간이었다고 합니다.

1834년, 순조34년에 다시 지어져 현재까지 전해져 오고 있는 건물이라고 하는군요.

 

 

'숭문당(崇文堂), 그리고 함인정(涵仁亭)'

숭문당은 국왕이 경연을 벌이던 장소, 그리고 함인정 역시 국왕이 신하들을 만나 접견, 경연을 하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숭문당의 현판은 조선 영조가 직접 남긴 어필(글씨)이라고 하더군요.

 

 

국보 제 226호로 지정된 창경궁의 정전, '명정전(明政殿)'

정사를 밝힌다는 뜻을 지닌 명정전은 국왕 즉위식, 신하의 하례, 과거시험, 궁중연회 등 공식 행사를 치렀던 장소입니다.

임진왜란 때 한 번 소실되었다 광해군 8년, 1616년에 재건되어 그 이후 소실 없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어

현재 남아있는 조선시대 궁궐의 정전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정전입니다.

 

 

창덕궁이나 경복궁에 비해 정전의 규모가 작은 편인데, 이 이유는 창경궁은 정치를 하기 위한 목적의 궁궐이 아닌

왕대비의 생활공간으로 지은 궁궐이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창경궁의 정궁, 명정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진 '명정문(明政門)과 행각(行閣)'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 그리고 명정전 사이에 세워진 중문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문입니다.

창덕궁을 거치지 않고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을 통해 궁궐로 들어오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곳이기도 해요.

 

 

마지막으로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弘化門)'

조화를 넓힌다는 의미를 지닌 홍화문은 덕을 행하여 백성을 감화시키고 널리 떨친다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창경궁 창건 당시에 처음 건립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광해군 8년인 1616년 재건되었다고 하네요.

또한 이 곳은 영조와 정조 등의 국왕이 궁을 나와 백성들과 직접 만나 의견을 듣고 가난한 백성들에게

직접 쌀을 나누어주었던 장소라고도 합니다.

 

 

설 연휴에 찾은 눈 덮인 창덕궁(昌德宮)과 창경궁(昌慶宮).

평소 수도권에 살면서 항상 근처로 지나가던 곳이었지만 정작 안으로는 한 번도 들어가본 적 없었던 곳.

이렇게 시간 내어 한 번 들어가 조선시대 왕궁의 모습을 느긋하게 둘러보는 것도 꽤 좋은 경험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가끔 번잡한 시내가 싫어 조용한 곳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그렇다고 지방 어딘가로 여행가기엔

시간이 여의치 않을 때, 서울 고궁을 찾아 둘러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꽤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2022. 2. 16 // by RYU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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