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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외식)/한식

2022.5.13. 진고개(珍古介 - 동대문점) / 1963년 오픈, 천하일미식후평(天下一味食後評)60년 전통 노포에서 맛보는 '도시락 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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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신설동 - 종로 쪽을 지나가다보면 윗 사진에 보이는 엄청 오래된 건물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기, 식당인 건 10년도 더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지나가면서 보기만 하고 실제 들어가본 적이 한 번도 없는 -

아니, 외관의 위압감에 눌려 들어가 볼 생각을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던 곳이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가 보게 되었어요.

 

 

이 가게 이름은 '진고개'

언제 달았는지 그 시기조차 짐작할 수 없는 오래 된 네온사인 간판에 '불고기, 냉면 - 진고개' 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바로 앞에 있는 '압해도' 라는 남도음식 전문점... 압해도... 작년 여름휴가 신안 놀러갔을 때 갔던 곳...;;

 

 

'진고개' 는 조선 시대부터 사람들로부터 전해오는 이름으로 현재의 남산 바로 앞, 명동과 충무로 근방에 위치해 있는데

조선시대에 남산골이었던 고개로 그리 높지 않은 고개였지만 진흙으로 길이 이루어져 있어

비만 오면 사람들의 왕래가 끊길 정도로 통행이 곤란하여 '진고개' 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아마 '진고개' 라는 식당 이름도 여기서 유래된 것이 아닐까 싶더군요.

 

 

그런데 왜 명동, 충무로쪽에 진고개라는 지명이 있었는데 동대문에 매장이 있느냐... 하면 사실 동대문이 본점이 아니라;;

실제 진고개 본점은 충무로 근방에 위치해 있습니다. 본점처럼 생겼지만 동대문의 이 매장은 본점이 아니라 동대문지점.

다만 충무로 본점에 비해 동대문점이 외관이 더 화려하고 규모가 커서 그런지 지점이면서 본점처럼 보이긴 하지만(...)

이 포스팅 하단에 진고개 충무로 본점 외관 사진이 있으니 그 사진 참고하시면 될 듯.

 

근데 제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있었던 이 식당, 갑자기 최근들어 왜 관심이 생겼고 이렇게 다녀오게 되었는지

뭔가 계기가 있어야 할 것 아니에요. 그 계기... 확실히 있었지요. 그건 본점 지나가면서 봤던 아래 간판 때문이었습니다.

 

. . . . . .

 

 

오른쪽에 있는 '도시락'(...)

정말 아무 이유 없이 저 메뉴 세 글자 보고 갑자기 너무 궁금해져서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결국 궁금증을 견디지 못하고 이렇게 혼자 진고개 동대문점을 방문하게 된 것입니다.

거창한 이유 없는, 그냥 정말 아주 사소한 호기심 때문에...ㅋㅋㅋㅋ

 

 

진고개 동대문점 출입문 안으로 들어오면 사진과 같은 풍경이 제일 먼저 반겨주는데요,

엄청 오래 된 원목 진열장, 그리고 그 위의 '진고개(珍古介)' 한자가 적힌 현판, 그리고 좌우의 세로로 된 현판과 난초.

왼쪽에 적힌 건 '천하일미식후평(天下一味食後評)', 그리고 오른쪽엔 한자 일부가 가려져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입구부터 분위기가 너무 위압적(...)이라 여기 잘못온 것 같아... 하고 주눅들어 다시 나가버릴지도...;;

 

 

안에서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한 분이 자리 안내를 해 주시던데요, 일단 자리를 안내받아 앉고 메뉴판을 받았습니다.

실내 서빙하시는 분들 보니 할아버지 한 분, 그리고 아주머니 몇 분이 계시던데 이 할아버지, 조끼에 정장 입고 계셨음.

 

 

메뉴판은 한식 위주로 꽤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긴 했습니다만, 전부 찍지 못하고 제 목표가 있는 페이지만 한 컷.

오늘 제가 목표로 하는 메뉴였던 '도시락정식' 은 A메뉴과 B메뉴, 두 가지가 있습니다.

A메뉴 가격은 14,000원, B메뉴 가격은 12,000원으로 2,000원 차이가 나는데 반찬 가짓수의 차이라고 하더군요.

 

주변에 여기 가게 잘 아는 분께 물어보니 진고개는 둘이 가서 갈비찜 하나 도시락 하나 시켜 나눠먹는 게 국룰이라고...;;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본 것도 있지만 여기서 판매하는 갈비찜 정식이 꽤 유명한 듯 합니다.

 

 

음식을 주문한 뒤 실내를 한 번.

사실 윗 사진은 밥 다 먹을 때쯤 찍은 사진으로 막 들어왔을 땐 실내에 식사하러 온 손님이 생각보다 꽤 많았습니다.

그리고 분위기가 분위기라 그런지 젊은 사람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나이드신 분들. 제가 아마 제일 젊었을걸요(...)

엄청 고급스러운 분위기는 아니지만 의자라든가 샹들리에 등의 장식이 꽤 고풍스럽다는 느낌은 있네요.

 

잘 보면 안쪽에 신발 벗고 들어가는 좌식 테이블도 따로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좌식테이블 왼편이 주방인 듯.

 

 

가게에서 판매하는 대표 요리와 식사메뉴가 벽에 글씨로 적혀있는데, 와... 진짜 손글씨 작살나게 멋있네요.

이렇게 붓글씨 개성적으로 잘 썼던 식당은 을지로3가의 중화요리 전문점 '안동장' 이후 처음인데...

참고로 이 사진 찍어 주변 친구들 보내주니 '너 같은 식당 갔다', '넌 이런 가게는 대체 어떻게 찾았냐...' 라는 반응이...;;;

 

 

종이에 인쇄되어 두껍게 비닐 코팅이 되어 있는 진고개 테이블보.

 

 

테이블보 왼편에 수저, 그리고 물수건 준비.

 

 

물은 물병 대신 직원이 직접 차를 담아줍니다. 모자랄 경우 직원을 불러 더 담아달라 요청하면 되고요.

가격대 있는 오래 된 식당이라 그런지 장, 노년층으로 이뤄진 직원분들 서빙이나 응대가 뭔가 묘하게 능숙한 느낌.

막 엄청 사근사근하고 친절한 건 아닌데, 오랜 세월에서 느껴지는 노련한 분위기가 있다고 해야 할까... 편안했습니다.

 

 

'도시락 정식 A(14,000원)' 도착.

뭔가 이것저것 꽤 많이 깔렸는데, 도시락 정식이라고 해서 도시락 같은 반합에 음식이 담겨나오진 않습니다.

대신 포장을 할 경우 반합에 반찬들을 밥과 함께 담아준다고 해요. 아마 그런 것도 있거니와

들어 있는 다양한 구성의 반찬이 흡사 도시락과도 같아 도시락 정식이라는 이름이 붙지 않았을까 한 번 추측해봅니다.

 

 

튀김류 찍어먹는 간장.

 

 

쌀밥, 그리고 된장국이 함께 나옵니다.

밥의 양은 일반적인 식당에서 제공되는 공기밥보다는 약간 더 많더군요. 공기의 높이가 보통 공기보다 조금 더 높은 편.

 

 

기본 반찬으로 나오는 배추김치.

 

 

3종의 절임 반찬류. 초생강과 락교, 그리고 오복채 무침이 함께 나오는데 저 오복채 무침이 생각보다 아주 맛있더군요.

오독오독하면서 간이 절묘하게 잘 되어 진짜 밑반찬으로 카레나 라면 등과 먹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참나물 무친 것.

 

 

무 세 덩어리가 통째로 올라간 동치미.

동치미는 아삭한 청량감있는 맛이라기보다는 조금 짠맛이 강하면서 살짝 발효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던 맛.

 

 

메인 요리인 '도시락' 은 큰 접시에 이런저런 다양한 종류의 반찬이 한데 담겨있는 구성인데요,

어떻게 보면 한식뷔페에서 음식 담은 것과 비슷하게 보입니다. 실제 친구가 이거 보고 한식뷔페냐는 이야기를 했어요.

주로 튀김류 반찬 위주로 이루어져 있고 아무래도 육류보다는 생선류 위주의 반찬들이 많아

은근히 옛날 일식집 같은 곳에서 나오는 도시락정식 이미지도 좀 있더군요. 또 반찬들이 상당히 올드한 인상도 들고요.

 

 

생선튀김과 꽃게튀김, 그리고 삼치구이 한 토막.

 

 

특이하게 오이소박이 한 개가 들어있는데, 알고보니 진고개 오이소박이가 꽤 유명하다고 하더군요.

아예 오이소박이를 반찬삼아 먹는 '오이소박이' 정식 메뉴가 따로 있고 오이소박이를 단품으로 주문할 수도 있습니다.

보통 다른 식당이라면 기본찬으로 내어올 수도 있는 오이소박이를 별도 메뉴로 넣을 정도라면... 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 김치도 뭔가 좀 특이한 맛. 그간 다른 식당에서 먹어본, 혹은 집에서 먹은 김치와는 확실히 다른 맛입니다.

겉절이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익은 김치도 아니고 발효가 꽤 독특하게 되어 꽤 여운이 많이 남는 맛이더라고요.

처음엔 먹었을 때 '음, 내 취향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씹을수록 또 묘하게 괜찮아 결국 다 먹었습니다.

 

 

어묵 튀긴 것은 간장에 살짝 찍어서...

이건 정말 딱 예상 가는 그런 맛입니다. 그냥 어묵 튀겨 간장에 찍어먹는 맛.

 

 

생선튀김은 뼈를 다 발라내어 그냥 간장 찍어 반찬으로 먹으면 됩니다.

여기 튀김류가 갖고 있는 독특한 특징이라 해야 할까, 바삭바삭한 요즘 트렌드의 튀김이 아닌 튀김옷을 두텁게 입혀내어

폭신폭신하게 튀겨낸 게 인상적인데, 분명 튀긴지 오래되어 눅눅한 게 아니 바로 튀긴 튀김인데 식감이 폭신하더군요.

 

 

구운 삼치 또한 전혀 비리지 않고 고소하게 기름이 잘 올라 있는게 간장 찍어 먹으니 꽤 맛있었습니다.

 

 

계란말이가 한 입에 다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 큼직한데, 육즙이 가득 담겨있어 이것도 꽤 맛이 좋더라고요.

쥬시한 육즙과 함께 달달한 맛이 입 안을 감도는데 예전 일본여행 갔을 때 츠키지에서 먹은 계란구이 생각이 나던...

계란말이 뒤 야채튀김과 만두튀김. 아쉽게도 만두는 시판제품 같아 좀 '이 가격에 나오기엔 좀 그렇지 않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오이소박이... 왜 오이소박이를 단품 메뉴로 빼서 따로 판매하는지 납득이 가는 맛이더군요.

간도, 숙성도 잘 되어있고 절인 오이의 아삭한 식감또한 진짜 괜찮아요. 매운맛과 단맛의 조화가 진짜 절묘하더군요.

다른 튀김류 반찬들의 기억이 다 잊혀질 정도로 아주 강렬한 오이소박이라 이 날 먹었던 것 중 제일 좋았던 것...ㅋㅋ

이 정도 오이라면 다른 반찬 없이 이것 하나만으로도 밥 먹을 수 있겠다, 왜 오이소박이 정식이 있는지 알 것 같은 기분.

 

 

마지막 디저트로 나온 포도까지 먹으면 식사 끝.

밑반찬부터 시작하여 깔끔하게, 그리고 기대했던 것만큼 만족스럽게 먹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만족스럽게 먹었다는 건 제가 가게에 대해, 이 메뉴에 대해 갖고 있던 기대나 호기심을 충족시켜줬다는 거지

사실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할 수 있냐 물어보면 솔직히 좀 미묘... 굳이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긴 조금 어렵긴 합니다.

14,000원에 선택할 수 있는 더 맛있고 충실한 가게는 아주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음식 구성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이 가격에...? 라고 하기엔 좀 허전한 감이 있고 조리 방식이나 맛 또한 옛스러운 느낌.

그래서 요즘 트렌드와는 맞지 않은, 좋게 얘기하면 전통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구시대적인 구성이란 생각도 들 수 있죠.

 

하지만 이런 것과 별개로 저 개인적으로는 맛이라든가 구성, 혹은 분위기 등 머릿 속으로 어느 정도 기대했던 수치를

충분히 만족시켜주고도 남았기에 아주 기분좋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ㅋㅋ 독특한 분위기가 되게 재미있기도 했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특히 오이소박이는 태어나 먹었던 것 중에 가장 맛있었던지라 이것 때문에라도 또 찾아오고 싶군요.

 

. . . . . .

 

 

이 사진이 충무로 본점. 동대문점에 비해 다소 외진 곳에 있고 가게 분위기도 약간 어두침침한 느낌.

충무로 본점과 동대문점 중 어딜 갈까 한참 고민했던 끝에 결국 이번엔 동대문점을 택하긴 했습니다만

만약 다음에 또 갈 기회가 된다면 그 땐 충무로 본점을 찾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카운터에서 계산할 때 가져온 진고개 홍보 리플렛. 아무 생각없이 집어왔는데 일본어로 된 리플렛이었습니다.

리플렛이 한 종류만 비치되어 있던데 그냥 일본어 리플렛 하나만 만들었던 건가...

 

. . . . . .

 

 

※ 진고개 동대문점 찾아가는 길 : 지하철 1, 4호선 동대문역 1번, 3번출구 하차(1번출구와 3번출구 중간에 위치)

http://naver.me/G6i7W0wN

 

네이버 지도

진고개 동대문점

map.naver.com

2022. 5. 13 // by RYU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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