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이나 잉어빵, 그리고 소위 말하는 '추억의 국화빵' 말고 '풀빵' 이라는 걸 기억하고 계신 분이 계십니까?
그 동글동글하고 조그마한 국화빵을 어릴 적 먹었던 추억의 풀빵이라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제 기억 속 풀빵은 작은 국화빵이 아닙니다. 진짜 '풀빵' 이라고 하는 붕어빵과 비슷한 크기의 빵이 따로 있었거든요.
이게 요즘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추억의 '국화빵' 혹은 풀빵. 일단 저는 어릴 적 이런 국화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못 봤다 뿐이지 실제 옛날에 이게 존재했을지도 몰라요. 누군가는 어릴 때 이걸 봤다고 하니...
그리고 붕어빵과 비슷한 크기를 갖고 있는 이 타원형의 빵이 제가 기억하고 있는 진짜 '풀빵' 입니다.
옛날 제 블로그에도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었습니다만, 이 풀빵이 사실 건대 쪽 노점 한 곳에 꽤 오래 남아있긴 했었어요.
그런데 그 건대 노점의 풀빵 틀이 몇 년 전 사라지면서 이제 우리나라에선 풀빵이라는 건 아예 멸종한 줄 알았었거든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 풀빵을 2023년(방문했을 당시엔 2022년 말이었지만) 기준 아직 팔고 있는 곳이 있었습니다.
보고 엄청 놀라서 어딘가 찾아보니 부평역 쪽이더라고요. 그래서 쉬는 날 직접 확인해보기 위해 일부러 찾아갔거든요.
처음 도착했을 땐 문이 닫혀있길래 '아... 허탕인가' 했었는데, 그래도 딱히 정기휴일은 아니었던지라 기다리다 보면
열겠지 싶어 근처 부평텐동에서 밥 먹고 바로 옆 스타벅스에서 커피 시켜놓고 좀 기다리다보니 다행히 문을 열긴 하더군요.
그 사이 눈이 내리기 시작해 이 날, 꽤 많은 눈이 쌓였습니다.
30년 전통의 부평 명물 '풀빵' 이라고 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두 노부부가 직원을 따로 두지 않고 운영하는 아주 조그마한 분식집이에요.
건물과 건물 사이에 컨테이너로 가건물을 하나 세워 거기에 공간을 두고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몇 년 만에 다시 본 풀빵 틀이 너무 반가워 할아버지께 양해를 구하고 틀을 찍어보았습니다.
풀빵 틀 앞에 앉아서 저렇게 계속 풀빵을 구워내고 계시더라고요. 바로 옆엔 단팥소가 담겨있는 통이 있었습니다.
바로 구워져 나오는 따끈따끈한 풀빵... 와 이걸 2022년에 다시 보다니... 보면서도 저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매장 안에 테이블이 조금 마련되어 있어 안으로 들어왔어요.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의 엄청난 한파는 아니지만 이 날도 눈이 많이 내리고 있어 실내가 좀 추웠는데
난로랑 열풍기 좀 켜 놓고 앉아있으라고... 빵 나오는 거 기다리는 동안 메뉴판을 한 번 찍어보았습니다.
매장에서 파는 메뉴는 순대와 떡볶이, 그리고 오뎅과 풀빵이 전부. 다만 오픈하자마자 들어온 거라 현재 풀빵 말고
다른 메뉴들은 다 준비중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빵을 굽고 그 옆에서 할머니가 떡볶이를 열심히 만들고 계시더군요.
일단 따끈한 오뎅 국물부터 한 컵.
풀빵 두 개(1개 1,000원) 주문. 조그만 바구니에 갓 구운 풀빵이 담겨 나왔는데 와, 진짜 보는 순간 뭉클한 기분...ㅋㅋ
크기, 모양, 심지어 풀빵 가운데 잘 보이진 않지만 살짝 새겨져 있는 문양까지 모든 게 어릴 적 풀빵 그대로입니다.
그래, 뭐가 추억의 국화빵이여 이게 진짜 추억의 풀빵이지...ㅋㅋ
참고로 익히 아시겠지만 국화빵, 붕어빵, 풀빵은 모양은 달라도 맛은 사실 거의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는데
(붕어빵이 풀빵이나 국화빵에 비해 빵 껍질이 좀 더 단단한 편이긴 하지만) 잉어빵은 이 빵과 맛이 완전히 다른 제품이에요.
얇은 빵 속에는 풀이라고 할 수 있는 쫀득하고 조금 물컹한 반죽과 함께 단맛이 강하지 않은 촉촉한 단팥이 가득...!!
사실 잉어빵에 익숙해진 사람이라면 오히려 잉어빵보다 이 풀빵이 더 밋밋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마는
(잉어빵은 반죽 자체에도 간이 되어있고 찹쌀반죽이라 표면이 좀 더 기름지고 감칠맛이 있긴 해요) 저에게 있어서는
잉어빵보다 이 풀빵 반죽이 더 친숙하고 익숙한 맛이라 부담없이 먹기 좋더라고요. 진짜 기억하고 있던 맛 그대로였습니다.
한 개 후다닥 먹어치우고 남은 한 개도 빠르게...!!
괜히 아까워서 못 먹으면 식어버려 맛이 없어지니 남은 빵은 따끈바삭할 때 빠르게 먹어치우도록 합시다.
가격이 조금 비싸다는 생각이 아주 없진 않았지만 그래도 2022년에 이 기억 속 풀빵을 먹을 수 있단 것만으로 감지덕지.
고작 이거 하나 먹자고 부평까지 찾아가는 가성비 떨어지는 짓(?)을 했냐고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 저는 이 풀빵을 일부러 찾아와 먹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일부러 여길 찾아오기 잘 했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굉장히 만족했고요, 몇 년 동안 기억 속에만 있었던 맛과 경험을 다시 해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었어요.
바깥에 눈 펑펑 내리는 풍경이 어째서인지 꽤 낭만적이라 나가기 전 한 컷.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겠지마는 그래도 이런 가게는 가능한 사라지지 않고 오래오래 남아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근처 스타벅스 창가 쪽 자리에 앉아 눈 내리는 풍경 바라보며 삼매경.
사실 풀빵 먹으러 가기 전, 가게 문 여는 거 기다리려고 앉아있었던 거긴 하지만... 눈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좋네요.
따로 상호명이 등록되어 있지 않아(정확히는 제가 못 찾아 그런 게 크겠지마는) 이번 포스팅은 위치 안내가 따로 없어요.
다만 여기 찾으시려면 '스타벅스 부평사거리점' 검색하셔서 거기 찾은 뒤 그 뒤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위치해 있습니다.
2023. 1. 24 // by RYUN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