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첫 11일짜리 장기여행, 2023년 11월 타이완 전국일주
(48) 하루 단 세 대, 고속철도와 경쟁하는 서부간선 특급열차 푸유마하오(普悠瑪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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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을 먼저 한국에 돌려보내고 혼자 즐기는 여행 2일차.
오늘의 첫 번째 일정은... 타이베이를 뜨는 것이다.
지난 2022년 12월 여행 때 친구와 같이 타이완에 와서 타이베이 여행을 마치고 타이중으로 넘어간 적은 있었는데
오늘은 그 타이중을 넘어 더 아랫쪽으로 내려갈 계획이다.
지하철이 아닌 일반철도 타이베이역 지하 대합실.
타이베이역은 지상에 번듯한 역사 건물이 세워져있긴 하지만 실질적인 여객업무를 보는 대합실은 지하에 위치해 있다.
일반철도 타이베이역은 고속철도를 운영하는 HSR, 그리고 일반철도를 운영하는 TRA 이렇게 두 개로 나뉘어져 있는데
서로 일단 운영사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고속철도와 일반철도의 사업자가 분리되어 있음)
역무실이라든가 자동발매기 등이 서로 분리되어 있다. 이 쪽은 고속철도 승차권 뽑는 곳.
고속철도(HSR) 타는 곳 개찰구.
개찰구 위에 출발 예정인 열차 시각표 및 해당 열차의 정차역 안내가 전광판으로 표시되어 나온다.
하지만 난 이번에 고속열차를 타지 않지...
고속열차 개찰구를 지나 일반열차(TRA)를 타는 승강장으로 이동한다.
일반열차(TRA) 개찰구 및 전광판. 현재 시각은 오전 7시 47분.
왼쪽은 타이완 섬 남쪽으로 내려가는 열차 시각, 그리고 오른쪽은 타이완 섬 북쪽과 동쪽으로 가는 열차 시각이다.
타이완 일반열차도 일본과 동일한 방식으로 지정좌석으로 운영하는 열차 외에 일반 통근열차도 운영하기 때문에
지하철 타듯 개찰구에 교통카드 찍고 들어가 승차하는 것이 가능.
다만 타이베이 첩운과의 환승 할인 같은 건 없다. 그냥 승차권 없이 교통카드 찍고 타는 열차도 있다는 것에 의의를 두자.
내가 탈 열차는 8시 정각, 팡랴오(枋寮)역으로 가는 특급열챠 '푸유마하오(普悠瑪號)'
팡랴오는 타이완 섬 남부, 가오슝보다 더 아래로 내려가야 나오는 핑둥현의 지역이다. 엄청 아래까지 내려간다는 뜻.
타이완 섬 남부 방향으로 내려가는 열차를 탈 수 있는 3번 승강장 내려가는 길.
3번 승강장은 타이완 남부 방향, 4번 승강장은 타이완 동부 지역으로 이동 후 아래로 내려가는 방향.
사실 타이완 섬이 외곽을 중심으로 철로가 순환선마냥 크게 하나로 이어져있어 모든 도시가 다 연결되어 있긴 하다.
다만 도시의 규모라든가 인구 밀도는 타이중, 가오슝 등의 대도시가 있는 섬 왼쪽이 압도적으로 높은 편.
내려갑시다~
2호차 승차 위치에 서서 한 컷.
기둥에 붙어있는 타이베이역 역명판.
맞은편에 일반 철도 중 가장 등급이 높은 특급열차 '쯔창하오(自強號)' 이름을 단 EMU3000 열차가 보인다.
지정좌석제가 아닌 교통카드만으로 승차 가능한 일반 통근열차.
구간차(區間車-취첸처) 등급이라고 부른다.
이 열차 이외의 다른 열차는 전부 지정좌석제로 운영하기 때문에 교통카드로만 승차할 경우 이런 열차를 타야 한다.
실제 이 열차는 생김새도 내부 좌석도 일반 지하철과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크게 헷갈릴 일은 없을 것이다.
고상홈에 지하 역사라 그런지 일반 철도가 아닌 지하철 기다리는 듯한 분위기.
열차 도착 안내 전광판은 LED 모니터를 사용 중.
타이베이 역 하행 열차 시각표.
행선지는 전부 다르지만 지하철 배차 수준으로 열차가 자주 들어오는 편.
특급 열차의 출발 시각, 그리고 중간 정차역 안내도 별도로 충실하게 잘 안내되어 있다.
엄청 정신없어 보이지만 실제론 되게 단순한 안내. 내가 탈 열차는 저기 위에 보라색으로 08시 출발이라 되어있는 열차.
맞은편 승강장의 쯔창하오 등급 EMU3000 전동차를 다시 한 번 한 컷.
작년 여행 때 지우펀 가려고 루이팡으로 이동할 때 교통카드만 찍고 이 열차를 잘못 타서 한 번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마침내 내가 탈 열차가 승강장에 들어오고 있다.
'푸유마하오(普悠瑪號) TEMU 2000 틸팅열차'
2013년도에 처음 운행을 개시한 등급으로 쯔창하오와 동급의 위치를 가진 최상등급의 열차라고 한다.
열차 이름의 유래는 열차가 주로 운행하는 동부 지역의 타이완 원주민 민족 중 하나인 '푸유마족' 에서 유래되었다고...
주로 열차는 산악 지대가 있는 동부 지역에서 운행하지만 하루 3회, 서부 지역을 운행하는 편성도 있다고 한다.
내가 타는 이 열차가 그 3회 운행하는 열차 중 하나로 중간 정차역은 반차오-타오위안-신주-타이중-자이-타이난-가오슝.
우리나라의 서대동부급의 위상을 지닌 엄청 빠른 열차로 가오슝까지 소요시간은 3시간 4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 때문에 아래로 내려갈 때 고속철도를 탈까 아니면 일반열차를 탈까 고민했던 것.
사실 고속철도를 포기하고 일반열차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환승 편의 때문이다.
타이베이역의 경우 고속철도와 일반철도 역사가 같은 건물을 쓰기 때문에 고속철도를 이용해도 시내 접근이 편한데
지난번 이용했던 타이중역을 비롯하여 타이난, 가오슝 등의 다른 도시의 경우 시내 중심인 일반철도 역사와 달리
고속철도 역사는 시 외곽에 떨어져있어 고속철도역에서 내린 뒤 타 교통수단으로의 환승이 강제되기 때문.
그래서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무거운 짐 들고 별도로 환승할 필요 없이 그냥 일반열차로 한 번에 가는게 낫겠다 판단.
푸유마하오 열차 내부.
중앙 통로를 중심으로 양 옆에 2x2 배열의 좌석. 통로 출입문 위에 현 열차 위치를 알려주는 전광판이 설치되어 있다.
모든 좌석마다 등받이 쪽에 쿠션이 설치되어 있는 게 특징.
발걸이와 함께 책자 같은 물건 놓을 수 있는 주머니, 그리고 테이블은 팔걸이 쪽에 설치되어 있다.
자, 그러면 나는 이 열차를 타고 어디로 갈까? 답은 타이난(臺南) 시.
소요시간은 3시간 10분. 요금은 738NT$(약 30,900원)
타이베이역부터 타이난역까지의 재래선 거리는 325km. 경부선(경부고속선 말고) 서울 - 동대구까지 거리와 비슷하다.
비슷한 등급의 서울 - 동대구간 ITX 새마을 요금이 31,400원이니 우리나라 열차와 얼추 비슷한 가격이라 보면 될 듯.
열차는 반차오(板橋) 역을 지나 타이베이 시내를 빠져나와 아래를 향해 힘차게 달려간다.
열차를 탄지 약 1시간 30분 여, 작년에 친구와 함께 찾았던 도시, '타이중(臺中)'에 도착.
지난 번엔 고속철도(TRA)를 타고 고속철도 타이중역에서 내려 일반철도를 한 번 갈아타서 이 곳에 왔는데
이번엔 고속열차 대신 일반철도를 타고 한 번에 타이중역으로 왔다.
근 1년만에 다시 보는 역사 풍경인데 저 너머로 익숙한 건물들이 보인다.
벌써 타이중에 여행을 다녀온지 1년이란 시간이 지났구나... 하지만 바깥 풍경은 그리 크게 바뀐 게 없는 느낌.
열차는 타이중역을 지나 이제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미지의 도시를 향해 이동한다.
타이완을 여러 번 왔지만 그간 항상 타이베이에만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나도 전혀 알지 못하는 곳이다.
곧 타이난역에 도착한다는 안내.
타이베이역에서 출발한 지 3시간 10분, 열차는 11시 10분 정각에 '타이난(台南)' 역에 도착했다.
그런데 여기 뭐 이렇게 승강장에 사람들이 많지...??
'타이난(台南)역 역명판'
타이난 시의 한자 표기는 臺南지만 특이하게 역 이름은 台南으로 표기한다. 이는 타이중, 타이베이 모두 마찬가지.
타이난역까지 힘차게 달려온 푸유마하오는 이제 타이완 남부 최대도시, 가오슝을 향해 다시 움직인다.
나가는 곳 승강장에 통근용 구간차 한 대가 정차해있는 것을 확인.
그런데 저 열차... 자세히 보니 꽤 익숙한 로고가 전두부에 새겨져 있는데... 그렇다. 우리나라 대우중공업에서 만든 차량.
열차 차종은 EMU 500 시리즈. 일반 전철과 마찬가지로 교통카드만으로 승차가 가능하다.
여긴 특이하게 승강장에도 대합실마냥 의자가 설치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개찰구, 대합실과 바로 연결되어 있는 1번 승강장이 상당히 넓은 편.
나가는 곳.
자동 개찰구가 설치되어 있지만 유인 개찰도 함께 하기 때문에 직원이 항시 상주해있는 모습.
타는 곳과 나가는 곳의 개찰구가 서로 분리되어 있다. 타는 곳 개찰구는 이 나가는 곳 개찰구의 왼편에 있음.
이 쪽이 역사 대합실 및 타는 개찰구가 있는 실내 공간.
역사 건물은 작년에 방문했던 타이중역에 비하면 상당히 작고 낡은 편인데 한창 지금 공사중이라고 한다.
그래서 대합실을 비롯하여 역 주변이 깔끔하지 않고 조금 난잡한 분위기.
밖으로 나가면 아예 역사 건물이 전부 가림막으로 쳐져 공사판같은 모습을 볼 수 있다(...)
현재의 타이난 역사는 1936년에 지어져 약 90여 년 된 낡은 건물로 지금은 구 건물을 개, 보수중이긴 하지만
향후 2028년을 목표로 타이베이역과 마찬가지로 모든 역무시설을 지하로 이전할 예정이라고 한다.
다만 (구)타이중역과 마찬가지로 타이난역은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이기 때문에 향후 지하 이전후에도 보존한다고 한다.
타이베이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많은 사람들이 내려 북적이는 분위기의 타이난역 앞 광장.
역 앞 야외 광장이 꽤 넓다. 그리고... 덥다!!
와, 이건 타이베이랑은 비교도 되지 않을 무더움인데... 타이베이가 그래도 아주 약간 선선한 감이 있으면 여긴 한여름임.
썬크림 바르지 않으면 피부 완전히 익어버릴 만한 자외선지수 강한 한여름...;;;
역 앞에서 뭔가 시끌시끌한 소리가 나길래 보니 어떤 술 취한 할아버지 한 분이 계속 소리지르며 사람들에게 화풀이중(...)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지만 저게 욕설이란 건 외국인인 나도 알 것 같다...
이런 거 보면... 타이완이나 대한민국이나... 사람 사는 동네 다 똑같다니까...;;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미지의 도시, '타이난(臺南)' 에 첫 발을 내딛었다.
이제부턴 오로지 감과 그동안의 여행으로 다져진 역량에 의지하며 새롭게 부딫혀볼 수밖에 없다.
= Continue =
2024. 8. 23 // by RYUN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