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첫 11일짜리 장기여행, 2023년 11월 타이완 전국일주
(59) 이렇게 먹어도 단돈 8,000원! 또 찾고싶은 오리국수집, 동분압압육경(冬粉鴨鴨肉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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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난에도 야시장이 꽤 성업하고 있다고 한다.
시내 곳곳에 야시장이 있어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타이난의 야시장도 한 번 구경하고 가야겠다 생각이 들어
어디를 갈까 찾아보던 도중 '신영화야시장(新永華夜市)' 이라는 것을 발견, 그 쪽으로 한 번 이동을 해 보았다.
거리가 멀지도 않았고 가는 길이 어렵지도 않았다. 모든 게 다 좋았다.
'야시장 자리엔 아무것도 없었다' 딱 하나 빼고는...;;;;;;
여기... 야시장 열리는 곳 맞아?!
...나중에 알고 보니 상설로 매일 야시장이 열리는 타이베이와 달리 타이난의 시내 야시장은 열리는 요일이 있어
해당 요일에 가야만 야시장이 열린 걸 볼 수 있다고 한다. 내가 간 신영화야시장은 이 날 열리지 않는 날이었던 것...;;
그것도 모르고 나는 계속 끝까지 '어, 구글지도가 잘못된 위치를 알려줬어!' 하고 오해를 하고 있었다.
야시장 열리는 요일이 정해져있다는 건 여행을 완전히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고 난 뒤에야 알게 되었지...;;
뭐 어쨌든 좀 허탈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이것도 경험이려니 생각하고 무언가 먹고 가기로 했다.
좀 전에 생선완자탕과 굴전을 먹긴 했지만 한 끼 식사로 하기엔 좀 아쉬웠고... 근처에 뭐가 좋은 게 있을까 하다
가게 간판 하나를 발견. 어, 여기 오리고기 요리 전문점인가?
'동분압압육경(冬粉鴨鴨肉焿)' 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가게 하나가 유독 밝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국수와 오리고기를 곁들인 요리' 를 판매하는 집.
오리고기 면이라... 한 번 들어가봐도 손해볼 건 없겠지...??
주방은 가게 바깥의 통로 쪽에 있고 건물 안쪽은 전부 홀로 운영하고 있다.
타이베이 여행을 다녀보면 알겠지만 이런 스타일의 가게들이 꽤 많다. 손님들 음식 먹는 실내 공간을 시원하게 하려고
주방을 바깥으로 빼 놓은 것일수도 있고 혹은 수도 등의 시설을 편하게 쓰기 위해 그런 걸 수도 있고...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이런 스타일의 가게가 꽤 많다는 것이다.
가게는 꽤 쿨한 인상의 모녀관계로 보이는 여성 두 분이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의외로 꽤 친절했다.
타이완 사람들의 친절은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아시겠지만 일본의 사근사근함과는 다르다. 이건 겪어봐야 알 수 있음.
색연필로 체크를 해서 달라며 코팅된 메뉴판을 받았는데 와... 이거 한자로만 되어 있어서 읽을 수가 없네(...)
그나마 읽을 수 있는 극소수 한자를 보고 어떻게든 추론해보기로 한다.
음식의 가격은 정말... 정말 저렴함.
이런 로컬 가게의 가장 큰 장벽이 언어인데 그 장벽만 극복하면 관광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싸게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여기도 중국계 아니랄까 온통 빨간 부적이 붙어있는 모습. 자세히 보면 어, 또봇도 있다...!
중국이든 타이완이든 빨간색과 금색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다소 허름한 실내에 TV에서는 뉴스가 계속 나오고 있었고 동네 아저씨 몇 명이 식사를 하고 있다.
영락없이 우리나라 작은 동네 백반집 분위기인데...ㅋㅋ TV에서 YTN 뉴스 나오고 동네아저씨들 밥 먹는 그런 식당.
어떻게 분위기가 우리나라 허름한 백반집이랑 이렇게 똑같을 수 있는 거지...
테이블에는 광고 전단으로 접은 종이 그릇이 놓여져 있는데 아마 오리뼈 등의 쓰레기를 놓으라는 것 같다.
기본 식기 준비.
내가 주문한 세 가지 요리 도착.
사실 정확한 요리 이름이 전부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편의상 오리비빔국수, 오리탕, 그리고 피단을 곁들인 두부.
그런데 놀랍게도 이 세 요리 가격을 전부 합하면 우리 돈으로 대략 8,000원 정도...!!
타이난 물가가 타이베이에 비해 싸다는 건 앞에서 식사, 간식 등을 통해 충분히 경험하긴 했지만 다시 한 번 받은 충격.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로 가격이 싸다고...? 이건 대한민국은 말할 것도 없고 타이완 사람들에게도 충격적일 만한 수준;;;
국수와 국물만 시키기엔 좀 심심할 것 같아 추가로 주문한 '피단을 곁들인 두부'
접시 안에 피단, 그리고 연두부와 함께 쪽파를 썰어넣은 끈적한 소스, 그리고 타이완 사람들이 아침에 죽을 먹을 때
많이 넣어먹는 먼지덩어리 같은 돼지고기 말린 것, '포크 플로스' 로 마무리했다.
간장이 함께 나오는데 아마 오리고기 찍어먹으라는 뜻이겠지?
그런데 간장인 줄 알았더니 약간 굴소스 같은 끈적한 장이었음. 일단 익숙한 맛이라 딱히 거부감은 없는...
피단을 반으로 갈라보았는데 어우... 와... 이거 진짜 찐 중의 찐인데;;;;
피단 안에 들어있는 노른자가 완전히 익은 노른자가 아닌 반숙 노른자라 끈적끈적한데다 안까지 완전히 새까매져서
이거 솔직히 못 먹는 사람에겐 좀 심하게 거부감이 올 듯. 나조차도 순간 움찔했음.
피단(皮蛋)은 계란, 오리알 등을 삭혀 만든 요리로 즉 발효음식... 같은 거라고 보면 되는데 그나마 우리나라에서 먹는 건
계란 노른자만큼은 노란색이 선명하게 남아있고 질감도 단단해서 꽤 먹을만한데 여기 건 상당히... 흐물흐물했다.
오, 두부는 꽤 맛있음. 굴소스 같은 끈적하고 짭짤한 소스와 포크플로스와의 조합이 생각보다 꽤 괜찮다.
오히려 간장만 찍어먹는 것보다 이렇게 먹으니 좀 더 복합적인 짠맛이 강하게 느껴져서 술 생각나게 만드는 맛인데
이자카야 같은 곳에서 술과 함께 나오는 작은 안주로 즐겨도 꽤 좋겠다는 느낌.
두부 자체의 맛은 우리나라의 연두부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식감이나 맛이나 그냥 똑같다고 보면 됨.
다만 피단은... 아직 나에겐 조금 어렵더라.
다행히 삭힌 냄새가 그렇게 심하진 않았는데... 끈적끈적한 식감 때문에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으나 좀 찝찝한 느낌.
오리알에서 발효된 치즈의 풍미가 느껴지는게 먹을만은 하면서도 '이게 맞나?' 싶은 묘한 느낌이 계속 들었달까...ㅋㅋ;;
그래도 못 먹을 수준까진 아니고 어디까지나 인지부조화가 있을 뿐 거부감까지 아니라 다 먹긴 했다.
이어서 먹어보는 '오리고기 탕'
살짝 기름이 뜬 맑은 국물 안에 오리고기, 그리고 채썬 생강과 쪽파 등을 올려 먹는 국물요리.
우리나라의 오리탕, 혹은 닭곰탕과 상당히 비슷한 느낌의 국물이고 국물에서 나는 향도 꽤 유사했다.
와, 이거 3,000원 정도밖에 안 하는 국물 맞아...? 뭔 오리고기가 이렇게 가득...
게다가 맛까지 좋음. 진짜 비린맛이나 향신료맛 하나도 없는 우리나라 닭곰탕과 너무 유사한 맛이다.
닭곰탕의 고기를 오리고기로 바꾼 것 외엔 완전 한국식이라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친숙한 맛인데
안에 들어간 생강이 진짜 큰 역할을 해 줌. 거의 마늘같은 향신료 역할을 해 주는데 느끼함을 잡고 엄청 향긋하게 해 준다.
이거 진짜 맛있음. 절대 한국인들에게 호불호 안 타는 완전 보약같은 국물이다.
함께 나온 '오리고기 국수'
비빔국수 스타일로 나오는데 굵은 면 위에 삶은 오리고기, 양념소스, 고수 등이 듬뿍 얹어져 나온다.
중화풍 짜장면이라 하는 '작장면' 과 꽤 비슷한 스타일. 다만 거기에 고수, 그리고 오리고기가 더 추가되었다는 차이.
와, 이것도 맛있어. 소스의 맛은 달짝지근함보다는 짭짤함 쪽에 좀 더 가까운데 역시 굴소스 베이스의 비빔면.
그런데 거기에 오리고기가 정말 듬뿍 들어가 계속 입맛 당기게 만들고 입 안을 풍족하게 해 주는 식감이 정말 좋다.
일단 이건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요리를 찾아보거나 접해본 적이 없는 여기서 처음 접해보는 요리라
생소하면서도 꽤 신선했달까... 아마 대한민국에서 이와 비슷한 요리를 먹는 건 힘들 것 같다. 그런데 묘하게 맛있다.
오리고기는 이렇게 굴소스 양념장에 콕 찍어서...
진짜 배부르고 또 크게 만족.
여기도 정말 계획 없이 감에 의지해 찾아간 곳인데 가격, 맛 모든것에서 너무 큰 만족을 얻었던 집이다.
여기만큼은 정말 언젠가 타이난으로 여행을 또 온다면 다시 찾아보고 싶네.
그리고 여기서만 먹을 수 있는, 다른 곳에선 먹기 힘든 메리트가 있는 음식이니만큼 사람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생각도...
타이난의 오리고기 국수 전문점, '동분압압육경(冬粉鴨鴨肉焿)'
타이난 여행을 할 기회가 생겨 방문하게 된다면 꼭 한 번 방문해보시는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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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지방이라 그런지 야외에 이렇게 화분을 많이 가져다놓고 화초 키우는 집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마네키네코 고양이 모양의 화분이 묘하게 귀여워서 한 컷.
바깥에 화분 갖다놓고 식물 많이 키우는 건 더운 지역 사는 사람들의 공통점인 듯 하다. 지난 베트남에서도 그랬었다.
만화방인 것 같은데... 익숙한 만화들이 꽤 많이 보인다.
소년탐정 김전일, 범인들의 사건부는 한국에는 정식 발매가 안 되었는데 여기엔 정식으로 또 나왔더라...;;
이제 호텔로 돌아가야 하는데... 음, 어떻게 돌아가지...
어떻게 가긴, 버스 타고 가야지.
그나마 여기서 19번 버스가 타이난역까지 가기 때문에 이걸 타면 편하게 돌아갈 수 있다.
타이난의 버스 정류장은 우리나라 버스 정류장과 너무도 똑같이 생겼다.
그냥 저 한자만 지우고 저 자리에 적당히 한글을 넣어놓으면 영락없는 대한민국 버스 정류장일 것 같아.
아, 시간 좀 걸리네...;;;
그래도 14분이면 뭐 기다릴 수 있는 정도니...근처 마트라도 한 번 다녀오자.
버스 기다리는 시간동안 정류장 근처에 있는 마트를 잠깐 들렀는데, 타이완도 빵 가격은 참 저렴하다.
일반적인 간식빵 등은 그래도 우리 돈으로 1,000원대 초~중반에 형성되어 있는데 저런 햄버거빵 같은 아무것도 없는
샌드위치용, 혹은 식사용 빵은 개당 가격이 고작 250원 수준... 진짜 싸기는 오질나게 싸다...;;;
다만 개인적인 취향차가 있겠지만 타이완에서 판매하는 빵들은 전반적으로 한국, 일본에 비해 맛은 좀 별로라는 느낌.
고급 제과점 제품은 차이점이 있을지 몰라도 적어도 양산빵만큼은 대한민국과 일본이 훨씬 낫더라.
내일 아침에 먹을 빵 하나 사들고 버스정류장으로 돌아오니 버스가 곧 도착한다고 한다.
저 멀리 들어오는 19번 버스.
이 정류장 근처에 사람이 없고 너무 어둑어둑해서 혹시라도 그냥 지나치면 어쩌나 싶어 열심히 손 흔들러 타겠단 제스처.
다행히 버스는 정류장에 내가 있는 걸 발견하고 바로 서서 태워주었다.
버스 안에 승객이 나 하나밖에 없었는데 와... 실내 조명을 다 끄고 운행하네...;;;
이런 버스는 처음 경험해봄. 나 제대로 버스 탄 것 맞지?
물론 제대로 탄 게 맞고 타이난 역 버스정류장에서 무사히 내릴 수 있었다. 처음 버스 탔던 그 위치에 바로 내려주더라.
호텔로 돌아와 샤워, 그리고 맥주 한 캔.
아까 너무 많이 먹어 뭐 안주같은 거 곁들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안 들길래 그냥 맥주만 마셨다.
타이난으로 처음 내려왔을 때 어떻게 여행해야 하나 막연한 걱정이 있었는데 막상 부딫혀 이렇게 다녀보고 나니
생각보다... 아니 생각 이상으로 꽤 괜찮았다.
뭔가 관광 포인트가 될 만한 유명한 지역을 많이 간 건 아니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 만족도가 상당히 높았음.
아마 앞으로의 여행도 계속 이런 느낌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두근거림을 안고 잠에 들었다.
※ 동분압압육경(冬粉鴨鴨肉焿) 구글지도 링크 : https://maps.app.goo.gl/cYS2uAw4vnwb1hZz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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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8. 28 // by RYUN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