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창 밀린 일본여행기 열심히 쓰는 중이긴 합니다만, 최근에 하나 흥미로운 철도체험을 한 게 있어 중간에 끼워 하나 올립니다.
수도권에는 '교외선' 이라고 하는 철도 노선이 있어요.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경의선 능곡역에서 출발하여 의정부시의 경원선 의정부역을 잇는 31.9km의 철도 노선으로
서울 북쪽의 교외 지역을 잇는다 하여 '교외선' 이라는 이름이 붙은 노선입니다. 이 노선은 이 지역의 유원지 등의 여객수요에 맞춰
한때 잘 나가는 노선이었으나, 지금은 연선 인구도 줄어들며 이용객이 급감, 2004년 초반을 마지막으로 여객영업이 중지,
이후 폐선은 되지 않았으나 20년 가까이 여객열차가 운행을 하지 않고 철도역사 건물도 방치되다시피한 사실상 폐선이나 다름없는
(부정기적인 화물 수요는 있었다지만) 상태로 오랜 시간 방치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 교외선에 다시 여객열차가 다니기 시작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선로 및 역사 수선하는 공사끝에 마침내 지난 1월 11일,
다시 정기 여객열차가 다니기 시작하며 20년만에 열차운행이 재개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 경험해볼 겸 다녀온 후기를 적습니다.
참고로 저는 개통 당일인 1월 11일은 아니고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1월 13일에 저녁에 다녀왔습니다.

대곡역에서 출발할까 의정부역에서 출발할까 한참 고민했는데, 일단 출발을 대곡역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동선상 이 쪽이 이동하기 더 좋은 것도 있거니와 의정부 돌아가서 부대찌개로 밥 먹고 집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이었거든요.
3호선 대곡역에서 내려 대합실로 이동하면 새로 생긴 전용 개찰구가 보이는데, 여긴 얼마 전 개통한 GTX-A 환승개찰구입니다.
정확히 GTX-A는 별도의 교통수단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여기에서 내려 수도권 전철 요금을 정산한 뒤 GTX-A 개찰구로 진입해
환승할인을 받아 새롭게 승차하는 방식.
GTX-A 북부 구간(운정중앙-서울역) 방문 후기는 다음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https://ryunan9903.tistory.com/571275
2024.12.31. 본 게임은 이제부터다. 꿈의 초특급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A노선 북쪽구간 개통(운정
지난 12월 28일,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의 첫 번째 노선인 A노선' 의 북쪽 구간이 개통하여 영업운전을 시작했습니다.GTX-A는 지난 3월 30일, 남쪽 구간인 '수서-동탄' 구간의 우선개통을 시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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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외선 타는 곳은 GTX-A, 또는 서해선, 경의중앙선 환승하는 방향과 완전한 정반대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1~5번 출구로 나가는 개찰구 옆에 새롭게 '교외선' 이라 써 있는 행선지를 따라 이동해야 합니다.

개찰구로 나가면 '교외선 타는 곳' 승강장과 대합실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가 나와요.
이 쪽으로 내려가면 GTX-A 역사 건물로도 이어지긴 한다고 합니다. 다만 GTX-A환승은 아까 전 개찰구 이용하는 게 편합니다.

어... 교외선 열차 보인다...!!
저 쪽이 이번에 새로 영업을 재개한 교외선 대곡역 승강장인가봅니다.
어둠이 짙게 깔린 역사 근처에서 유일하게 밝게 빛나는 곳.

1층 대합실까지 내려오면 '교외선 타는 곳' 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개방된 걸 볼 수 있습니다.
저 통로로 가면 교외선 승강장으로 바로 연결됩니다.

교외선 운행재개를 알리는 X-배너.

그 옆의 벽엔 현수막도 한 장 붙어있습니다.
'옛 추억 속 청춘의 꿈과 설렘을 싣고 다시 출발' 이라는 문구를 담은 교외선 운행재개 현수막.
이 노선은 GTX-A처럼 신규 노선이 개통한 게 아닌 과거 영업을 중단했던 노선이 재개되는 거라 개통 대신 재개란 표현을 씁니다.

교외선은 당초 영업 재개를 할 때 하루 왕복 20회(상, 하행 각 10회) 여객열차 운행을 할 계획이었다고 하나
현재 개통 초기라 선로 안정화를 위해 하루 왕복 8회(상, 하행 각 4회)만 임시로 여객열차를 감축운행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향후 선로가 안정화되면 여객열차를 더 많이 집어넣어 자주 다닐 계획이라고 해요.
그리고 현재 다니는 시각표도 낮 시간대엔 편성이 하나도 없고 출근시간대 두 대, 퇴근시간대 두 대만 있는 걸 보아
일반적인 여행 수요보다는 지역 연선 주민들의 출, 퇴근 수요를 잡기 위한 목적인 듯 합니다.
여객운임은 구간에 관계없이 전 구간 2,600원. 무궁화호의 기본 운임과 동일한데, 이는 이 구간이 무궁화호 열차가 다니기 때문.
전철화되지 않은 구간이라 무궁화호 디젤기관차가 운행한다고 합니다.
다만 1월 31일까지 운행 재개 기념 겸 홍보의 목적으로 요금을 편도 1,000원으로 낮춰 운행한다고 해요.
지하철 기본요금 1,400원으로 10km까지밖에 이동 못 하는데, 단돈 1,000원에 30km 가까운 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니...!!
오픈 초기 이벤트 운임을 감안해도 말도 안 되는 가격이긴 합니다. 그만큼 홍보를 위해 꽤 신경쓴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코레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티켓 예매, 그게 안 되면 차내 승무원에게 일단 승차한 뒤 열차표를 발권하는 것도 가능한데
대곡역에는 무인 티켓 발매기가 한 대 설치되어 있어 여기서 표를 구매할 수 있습니다. 다만 카드 전용 발매기에요.
이건 수도권 전철 1회권 발매기가 아닌 교외선 기차표를 발매하는 전용 기기이므로 전철 승차권 발매, 충전은 불가능합니다.

근데 새 기계가 아니라 중고 기계를 어디서 갖고 온 건가... 화면이 왜 이렇게 누렇게 떠 있어(...)

저는 코레일 앱에서 티켓을 예약했는데, 혹시라도 실물 승차권으로 교환할 수 있나 싶어 한 번 눌러봤더니 그건 안 되더군요.
대곡역에서 열차 승차할 경우 꼭 여기서 발권 안 해도 괜찮습니다. 일단 표 없이 차를 탄 뒤 승무원에게 구매를 요청해도 됩니다.

승강장으로 가는 통로가 살짝 길더군요.
이게 옛날 교외선 운행하던 시절의 대곡역에서도 실제로 사용했던 통로였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완전히 새롭게 재개장을 마친 타는 곳 안내.

반대편에는 무려 네 개 노선으로 환승할 수 있는 환승 안내가 붙어있습니다.
대곡역 근처는 지금도 허허벌판으로 역세권이라 할 만한 게 없는데 무려 4개의 전철 노선과 1개의 여객열차 노선이 겹치는
엄청난 규모의 환승 거점이 되었다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조금은 기이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교외선 대곡역 승강장은 1면 1선의 단선 승강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의정부, 일영 방면 타는 곳 행선판.

승강장 내 LED 전광판은 딱 한 개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것도 열차 운행 재개를 하면서 새롭게 달았겠지요.
제가 탈 열차는 18시 19분, 대곡역을 출발하여 의정부역에 도착하는 무궁화호 2615호 열차입니다.
중간 정차역이 원릉, 일영, 장흥, 송추의 네 개 역만 있는데, 원래 교외선엔 이보다 더 많은 역이 있었지만 지금은 저기 나온 역만
보수를 마쳐 운영할 거라 해요. 저기에 들어가지 못한 옛 교외선 역 일부는 추후 추가될 여지도 있다고 합니다. 벽제역 같은 곳이요.

승강장 끝 지점.

승강장 끝에 위치한 대곡역 역명판.
요새는 달대식(천장에 매달아놓는) 역명판은 안전 문제 때문에 없애는 추세라 이런 지상에 세워놓는 역명판을 활용하더라고요.

출발 대기중인 무궁화호 4,400호대 디젤 기관차.

교외선 운행용으로 2개 편성을 새로 수선하여 만들었다고 하는데, 열차 도색까지 완전히 새롭게 하여
같은 무궁화호임에도 불구 타 노선에서 보이는 도색과는 완전히 다른 외관을 지니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컬러가 은은한 레트로풍.
그래서 멀리서도 상당히 눈에 띄고 또 신형 차량이 아닌 구형 무궁화호 차량임에도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이제 한국철도에서 무궁화호는 노후화되어 하나둘 없애는 추세인데, 오히려 새롭게 만든 상당히 이례적인 사례.
깔끔하게 만든 '무궁화호, 의정부-대곡' 행선판이 선명하게 눈에 잘 띕니다.

교외선 열차는 앞, 뒤에 기관차를 하나씩 달아놓고 그 사이 2량의 객차를 연결하여 운행하고 있어요. 2량 1편성.

무궁화호 차내 전광판은 통로 오른쪽에 TV를 한 대 달아놓아 그걸로 영상을 송출하고 있습니다.
대곡역에서 의정부역까지의 소요시간은 50분. 이 구간의 총 운행 거리가 30.3km니 표정속도는 그렇게 높지 않은 편입니다.
운행 속도는 평균 50~60km 정도 속도로 운행하기 때문에 경부선 등 타 노선에서 탔던 무궁화에 비해 꽤 느리게 느껴질 거에요.

의외로 연선에 거주하는 일반 승객들 비중이 꽤 있었습니다. 평일 저녁에 좌석이 만석까진 아니어도 창가쪽 자리는 꽉 찰 정도.

좌석 시트도 깔끔하게 교체를 했는지 새 열차마냥 뽀송뽀송.
도색만 새롭게 한 게 아니라 실내도 완전히 깔끔한 새 열차마냥 정비를 새롭게 한 듯. 다른 무궁화호에 비해 확실히 깨끗했습니다.

누가 기차여행의 낭만은 삶은 계란이라고 했지(...)
삶은 계란은 아니고 구운 계란이긴 하지만... 먹으려고 꺼내긴 했는데, 먹을 분위기는 아닌 것 같아 조용히 다시 넣었지만요...;;
어쨌든 열차는 정시에 의정부역을 향해 출발.

첫 번째 정차역인 원릉역.
대곡역과 원릉역 사이엔 원래 대정역이라는 역이 있습니다만, 이번 재개통에선 이 역은 일단 무정차 통과.
하지만 구 역사 건물과 시설은 아직 철거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두 번째 정차역은 일영역.

일영역은 교외선의 모든 역 중 유일하게 상, 하행 승강장을 갖추고 있는 복선 선로의 역사로 재개통하였는데
이는 교외선의 열차가 이 역에서 상, 하행 열차가 서로 교행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대곡 -> 의정부행 열차, 그리고 의정부 -> 대곡행 열차가 이 역에서 만나게 되지요. 그리고 어느 한 쪽이라도 이 역에 도착 못 하면
열차는 그 한 쪽의 열차가 역에 도착할 때까지 출발하지 못하고 계속 대기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일영역에서 반대편 열차 도착하는 걸 기다리기 위해 약간의 대기가 발생했고 여기서 출발 지연이 약 7분 정도 생겼어요.

일영역은 이번 교외선 개통 때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역인데요, 종착역인 대곡, 의정부를 제외한 나머지 역사들이 전부
기존 시설물을 철거하고 규모는 작지만 새 역사와 승강장을 지어 재개통한것과 달리 이 역은 기존 역사를 철거하지 않고
리모델링을 하는 쪽으로 재개통을 진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운행 중단 시절의 옛 일영역의 분위기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거니와
그것도 모자라 과거 철도청 시절 사용하던 구 역명판 양식의 디자인을 일부러 활용, 레트로한 느낌을 최대한 살려내었습니다.
향후 이 곳엔 교외선 철도박물관도 조성할 계획이라는데, 그 박물관이 개통하면 일영역 자체가 관광지가 될 수도 있을 듯.
BTS(방탄소년단)의 뮤직비디오 '봄날' 촬영지가 이 곳이라 BTS 팬들이 성지순례를 위해 이 역을 많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아마 일영역을 새롭게 짓지 않고 리모델링 방식을 취해 옛 역의 분위기를 남겨놓는 가장 큰 이유가 이것 때문 아닐까 싶기도 해요.
일영역은 나중에 교외선 철도박물관이 정식 개장하면 그 때 즈음 다시 한 번 구경하러 와볼까 싶습니다.

다음역은 장흥역.
재미있는 건 출, 퇴근 목적으로 타는 중, 장년층 사람들도 교외선 재개가 신기한지 역에 설 때마다 사진을 열심히 찍고 계시던...
열차 내에 철덕(...)으로 보이는 젊은 친구들도 좀 있었습니다만, 그와 별개의 일반 승객들도 꽤 흥미롭게 사진을 찍고 있어
이 사람들에게도 교외선 개통은 꽤 큰 의미로 다가온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습니다.

송추유원지로 한때 유명했던 송추역 정차.
송추역은 몇 년 전, 여기 근처에 유명한 중화요릿집 가기 위해 친구 차 타고 왔을 때 구 역사를 구경해본 적이 있었는데
그 구 역사 시절의 흔적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규모는 작지만 완전히 역사를 새롭게 지었어요.
다만 개통 극초기라 아직 공사가 완전히 끝나진 않은 듯. 역사 이곳저곳에 공사 자재가 조금 남아있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종점, 의정부역 도착.
교행대피 때문에 원래 예정시각보다 약 8분 정도 지연 도착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KTX 같은 고속열차 지연이었더라면 좀 짜증이 났을텐데, 교외선은 워낙 느리게 운행하는 노선이기도 하고
속달성을 위한 목적으로 타는 노선이 또 아니다보니 이 정도 지연이 났어도 딱히 별 생각은 안 들던... 그냥 그렇구나... 하게 되네요.

수도권 전철 1호선이자 교외선 철도역인 의정부역 새 역명판. 바로 뒤로 수도권 전철 승강장과 스크린도어가 보입니다.

이 곳에서 종착한 열차는 행선지를 바꿔달고 다시 대곡역으로 되돌아가요.
그리고 지금쯤 대곡역에 도착한 열차도 다시 행선지를 바꿔 의정부역으로 되돌아오겠지요. 일영역에서 둘이 다시 만날 거고.

짧은 여행을 마치고 의정부역 대합실로 올라왔습니다.

좀 전까지 타고 왔던 열차는 다시 행선지를 바꿔 19시 29분, 대곡으로 되돌아갈 예정.

그리고 예정에 전혀 없었는데, 대합실 쪽으로 올라오니 코레일 직원들이 교외선 승객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고 있더라고요.
따끈하게 데운 미니 페트 음료(이거 외에 커피도 있었음), 그리고 교외선 운행재개기념으로 제작한 키링을 하나씩 나눠주면서
'교외선 앞으로 많이 이용해주세요' 라며 인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철도 개통식할 때 상품들 나눠주는 건 처음 받아보는지라 조금 얼떨떨하긴 했는데, 교외선 기관차 모양으로 만든 키링 퀄리티가
생각보다 좋아서 이거 진짜 만족했습니다. 여튼 열차 타고 생각지도 못한 선물까지 받아 굉장히 기분좋게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약 20년의 공백을 딛고 다시 여객열차가 다니기 시작하는 교외선.
다른 새롭게 개통하는 철도노선과 달리 이제 하나둘 퇴역하기 시작하는 무궁화호, 그것도 전철화되지 않은 디젤동차를 집어넣고
영업속도도 50km 정도밖에 안 되는 정말 가성비 안 나오고 지방 로컬선 분위기 물씬 나는 느린 철도긴 하지만,
단순 속도과 쾌적함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추억과 낭만, 그리고 느림의 미학이 담겨있는 매력적인 노선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엔 열차에 탑승하고 있어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나중에 일영역은 버스 타고서라도 일부러 한 번 가 봐야겠어요.
요즘은 느끼기 힘든 그 레트로함의 감성을 제대로 한 번 체험해보고 싶습니다.
2025. 1. 15 // by RYUN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