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유튜브를 비롯하여 SNS와 인터넷 공간을 뒤흔든 하나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남산돈까스 원조 논란' 인데요,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면 그동안 우리가 남산돈까스의 원조로 알고 있었던
101번지 남산돈까스(http://ryunan9903.egloos.com/4418664)가 사실은 원조집이 아니었고
진짜 남산에서 1992년 처음 돈까스를 시작했던 가게는 현재 101번지 남산돈까스 자리에서 영업하는
점주에게서 쫓겨나 돈까스 거리에서 1km 떨어진 한참 외진 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유튜버 '빅페이스'의 채널에 이 사건에 대해 정리해놓은 영상이 있습니다.
참고로 현재 이 사건은 진실공방이 이어지고 있으며, 대체적인 여론은 원조집과 유튜버 쪽에 완전히 기울어진 상태.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남산돈까스'는 다 거짓말! https://www.youtube.com/watch?v=_PMuDrMVeNg&t=701s)
어쨌든 이 원조 남산돈까스 사건은 뉴스에 나올 정도로 일약 수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기존 원조집으로 알고 있었던 101번지 남산돈까스 본점엔 사람들의 엄청난 비난,
그리고 원조집에서 밀려 한참 떨어진 곳에서 홀로 장사하고 있는 진짜 남산돈까스를 시작한 원조집엔
수많은 사람들의 격려와 칭찬이 계속 이어지는 분위기가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뭐 서두는 이 정도로 하고, 원조 남산 돈까스는 어떨까? 하는 호기심과 관심병(?)이 도져 결국 여길 찾게 되었어요.
지난 5월 19일 수요일 부처님 오신 날, 남산 등반을 하면서 겸사겸사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SNS공간에서 시작된 이슈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는지, 이 가게 앞엔 상당한 줄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막 끝도 없이 줄이 늘어선 것까진 아니고 회전율이 빨라 얼마 안 기다리고 들어갈 수 있었지만요.
가게 입구에는 '남산돈까스 최초집' 이라는 문구와 함께 1992년 영업하던 시절의 사진이 붙어 있습니다.
유튜브 채널에서 보던 그 녹색 간판의 1992년 간판 말이지요. 그리고 현재 101번지 간판 사진도 있습니다.
예전 남산돈까스 영업하던 시절의 사진과 함께 연예인 사인이 붙어 있는 모습.
햇살이 꽤 뜨겁고 줄이 길어 언제 들어가나 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매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공휴일 점심, 남산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몰리면서 실내는 식사하는 사람들로 북적북적.
직원들도 바쁘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바로 자리 안내를 받아 앉을 수 있었습니다.
메뉴판을 한 컷.
남산돈까스는 어느 가게를 가나 가격이 그다지 저렴하지 않은(...)게 특징이라면 특징인데,
원조집 남산돈까스도 결코 저렴한 가격은 아닌 듯 합니다. 기본 왕돈까스 가격이 9,500원.
튀김류 메뉴는 돈까스, 생선까스, 반반(돈까스+생선까스), 그리고 치즈돈까스 네 가지 종류가 있으며
그밖에 한식 찌개메뉴로 우거지 조선국밥, 꽁치김치찌개, 순두부찌개가 있습니다. 이 쪽은 가격 8,000원으로 동일.
테이블엔 쌈장통과 후추, 간장통, 그리고 물컵과 티슈, 숟가락이 비치되어 있습니다.
특이하게 수저통 안엔 숟가락 한 가지만 있는데, 포크와 나이프는 음식 주문시 직원이 따로 가져다주더군요.
두 테이블당 하나씩, 중간에 반찬 담겨있는 통이 있어 직접 반찬을 담아먹을 수 있습니다.
풋고추와 배추김치, 그리고 깍두기 세 가지가 준비되어 있고 깍두기, 김치는 집게로 집으면 됩니다.
풋고추는 손으로 집어야 하기 때문에 집기 전에 가급적 물수건으로 손 닦고 집으셔야 할 듯.
물티슈와 함께, 기본 식기 세팅.
반찬 그릇을 국물과 함께 가져다주는데, 먹을 만큼 그릇에 덜면 됩니다.
깍두기는 꽤 먹을만했고 풋고추는 맵지 않아 쌈장에 찍어먹기 딱 안성맞춤인 맛. 풋고추 아주 맛있었어요.
그리고 배추김치는 익은 김치는 아닌데, 제 입맛에는 별로 안 맞는 쪽이었습니다.
메인 돈까스가 나오기 전, 국물과 크림수프 두 가지가 동시에 나오는데요,
사람이 많이 몰려 바쁜 상황이라 미리 떠 놓았던 게 나왔는지 수프가 많이 식어있었습니다(...)
국물같은 경우는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은 우동국물로 수프와 똑같이 꽤 식어있었습니다만
다 마신 후 추가로 요청하니 그 땐 새로 떴는지 아주 뜨거운 국물로 나왔습니다. 역시 미리 떠놓은 걸 내어준 듯.
둘 다 물을 너무 탔는지 좀 밍밍합니다. 국물은 좀 더 간간하게, 수프는 좀 더 걸쭉해도 좋을텐데 말이지요.
1992년 창업, 약 30여 년이 역사를 이어 온 진짜배기 '남산돈까스(9,500원)' 가 나왔습니다.
다른 남산돈까스 이름을 달고 장사하는 가게들처럼 소스를 부어 나오는 경양식 스타일의 돈까스.
사이드로는 쌀밥과 채썬 양배추 샐러드, 그리고 옥수수 통조림이 약간 담겨나옵니다.
경양식, 혹은 김밥천국 돈까스집에서 나오는 사이드와 큰 차이 없는 평범한 구성.
제가 그간 종종 먹어 온 왕돈까스가 가령 홍익돈까스의 왕돈까스라거나 강동구 주양돈까스 같이
대체적으로 가격대비 푸짐하게 담아주는 돈까스 위주라 거기에 기준이 맞춰져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처음 돈까스 접시를 받았을 때 '읭? 이게 왕돈까스라고...?' 하는 의아함과 약간의 괴리감이 느껴졌는데요...;;
생각했던 것보다 돈까스가 별로 안 커요. 평범한 동네 경양식 돈까스 혹은 김밥천국과 비슷한 사이즈입니다.
냉동 제품이 아닌 사람이 직접 고기를 얇게 펴서 빵가루 입혀 튀겨내는 수제 돈까스니만큼
크기가 제각각이라 좀 작은 조각이 걸렸겠거니... 라고 생각해봤지만, 같이 간 일행 것도 크기가 제 것과 엇비슷.
원래 남산돈까스가 아주 맛있는 돈까스라기보다는 그냥 추억보정, 혹은 나들이 외식 기념으로 먹는거라
특별히 이 곳에서 먹어야 할 이유가 있을정도로 맛있는 건 아니라는 건 다들 익히 알고 계실 겁니다.
'남산에 모처럼 나들이 나왔는데 나온 김에 한 번 남산돈까스 먹어봐야겠지?' 혹은
'와, 옛날 어렸을 때 남산 가면 이 돈까스 먹었는데, 오래간만에 한 번 먹어볼까?' 라는 이유로 가는 경우가 많지요.
그런데 그걸 감안해도 조금 기대했던 진짜 원조집 돈까스 맛은... 정말 솔직하게 말하면 많이... 실망스럽네요.
얇게 편 고기는 너무 튀겨져 좀 딱딱했고 위에 얹어진 소스 역시 지금 사람들이 선호하는 트렌드와
그다지 맞지 않는 90년대, 옛날에 머물러 있는 맛이었습니다.
그럼 예전에 니가 다녀온 동인천 잉글랜드 돈까스도 옛날 소스맛인데 거긴 그렇게 극찬을 하더니
이거 앞뒤가 안 맞는 거 아니냐? - 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 돈까스집의 소스와는 차이가 있어요.
추억의 옛맛을 지금 트렌드에도 먹힐 수 있도록 연구해가며 꾸준히 지켜가는 것과
별다른 발전이나 연구 없이 그냥 과거에만 머물러있는 맛의 차이. 이걸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여튼 동인천 잉글랜드 돈까스의 소스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너무 밍밍하고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맛이에요.
1980~90년대만 하더라도 돈까스는 졸업식, 혹은 생일날 먹는 특별한 외식이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다만 2021년 지금 돈까스는 언제든 먹을 수 있는 대중적인 외식 중 하나로 자리잡았고
경양식 이외 두꺼운 고기의 일본식 돈카츠집도 늘어나면서 품질로 승부보는 훌륭한 가게들이 많아졌잖아요.
이런 스타일의 돈까스는 돈까스를 자주 접할 수 없었던 20세기엔 먹힐지 몰라도 지금은 아무래도 많이 어렵습니다.
정말 못 먹을 정도가 아닌 이상 가급적 음식은 남기지 않고 깔끔히 먹는 주의라 남김없이 다 먹긴 했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진짜 원조였던 남산돈까스는 생각 이상으로 아쉬움만 남았던 것 같습니다.
원조논란을 떠나 순수 맛으로만 비교하면 원조 자리를 빼앗았다고 비난받는 101번지 집이 더 나았단 생각도 있어요.
개인적으로 실망한 것과 별개로 현재 진짜 원조 남산돈까스집은 한 유튜버의 폭로로 인해
오랜 시간 억울하게 원조 이름을 빼앗겼던 세월을 극복하고 '진짜 원조' 라는 이름을 다시 돌려받아
사진과 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연일 매장을 방문하며 사람들의 큰 응원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관심도 잠시, 아무리 진짜 원조집이라도 맛에서 만족을 주지 못하면 사람들은 재방문을 하지 않을 터인데
현재로선... 이 부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보고 또 많이 연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보입니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 못하고 과거에만 머물러있으면 반짝이는 관심이 끝난 뒤 다시 외면받게 될 지도 모르니까요.
아쉽게도 제 개인적으로는 별로 만족스러운 돈까스가 아니었습니다만,
그래도 원조 이름을 빼앗겼던 세월을 보상받을 수 있게, 이름을 되찾고 발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PS : 원조집 논란과 별개로 남산돈까스거리의 돈까스집들은 여전히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습니다.
주차요원 겸 호객을 하는 직원들이 저마다 나와있는 모습도 예전 그대로. 크게 바뀐 건 없습니다.
다만 방송에서 논란이 되어 네티즌들의 집중 포화를 받은 101번지 남산돈까스집은 긴 줄이 사라졌네요.
매장 내부를 따로 보진 못했습니다만, 줄이 사라진 것만으로도 타격을 크게 입은 것 같아보입니다.
현재 이 원조 논란은 법적 공방으로 이어지고 있어, 어떤 결과가 나올지 한 번 지켜보아야겠습니다.
※ 남산돈까스전문점 찾아가는 길 : 지하철 4호선 회현역 5번출구 하차, 남산 올라가는 길 백범광장공원 맞은편
2021. 5. 24 // by RYUN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