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2, 3호선 을지로3가역 5번 출구를 나오면 바로 앞에 위치해 있는 '을지다방'
을지다방은 현 위치에서 영업한 지 약 3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오래 된 을지로 커피 전문점으로
수많은 카페가 골목골목마다 생겨나고 있는 요즘, 8~90년대 '다방' 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입니다.
레트로한 분위기의 핫 플레이스로 사람들에게 알음알음 알려지면서 이 곳을 일부러 찾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KBS 한국인의 밥상, 그리고 최근엔 세계적인 월드스타 'BTS(방탄소년단)' 이 이 을지다방을 다녀가면서
더욱 더 유명한 을지로의 핫 플레이스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BTS 2021 시즌그리팅 촬영 장소가 바로 이 을지다방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이 가게에 호기심을 갖게 된 큰 계기가 있는데요, 바로 매장에서 판매하는 '라면'
우연히 유튜브를 통해 이 곳에서 판매한다는 라면에 대한 정보을 알게 된 뒤 엄청난 호기심이 생기더군요.
무슨 다방에서 라면을 팔아? 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어떤 연유로 다방에서 라면을 팔게 되었는지는
천천히 가게를 소개하면서 풀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다방은 건물 2층에 위치해 있습니다.
창문에 많은 화분이 놓여져 있는 저 곳이 을지다방이에요. 그리고 건물 1층엔 오래 된 노포 '을지면옥'이 있습니다.
다방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2층으로 올라간 뒤 왼쪽 문으로 들어가면 을지다방이 나옵니다. 참고로 방문한 시각은 오전 9시.
※ 을지다방 내부는 카메라를 이용한 상업 목적의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고 합니다.
아래 사진들 중 실내 공간 사진은 아주머니께 허락을 구한 뒤 핸드폰 폰카로 촬영한 사진입니다.
아침 일찍 방문하여 비교적 한산한 분위기의 을지다방 내부.
화려한 문양의 푹신한 소파, 테이블마다 놓여있는 설탕통과 한 장씩 뜯어쓰는 일력까지!
카페가 아닌 오래 된 다방 분위기가 그대로 녹아있는 장소입니다. 와, 2021년에 이런 풍경을 보다니...!!
'을지다방' 상호명이 붙어있는 창 밖에는 수많은 꽃 화분이 놓여 있고
실내에도 산수화 액자, 브라운관 TV, 창틀에 설치된 오래 된 에어컨까지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소품들.
일부러 연출한 게 아닌 오래 전부터 그 자리 그대로 있었던 사람의 손때가 묻은 물건들이 곳곳에 놓여 있습니다.
BTS 말고도 런닝맨이라든가 몇몇 방송에 소개된 적이 있었나봅니다.
서울특별시에서 지정한 '오래가게' 에도 선정되었는지 '오래가게' 액자가 매장에 걸려 있네요.
옛날 가정집에 가면 휘호와 함께 하나쯤은 있었던 마음 다스리는 글.
저희 집에도 이와 비슷한 글귀가 적인 액자가 있었는데 언제 없어졌는지 기억도 잘 안 나네요.
BTS(방탄소년단)가 앉았던 자리는 현재 손님이 앉을 수 있는 자리로 활용하지 않고
이렇게 액자와 친필 사인 등을 진열한 별도의 전시 공간으로 따로 꾸며놓았습니다.
실제 매장에 온 손님들이 BTS를 보고 이 자리에서 기념 사진을 많이 찍는다고 하더라고요.
매장에서 판매하는 각종 음료 메뉴.
모든 음료 가격은 잔당 5,000원으로 균일하며 가장 인기 있는 음료 메뉴는 '쌍화차' 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긴 라면이 유명다하면서 벽에 붙어있는 메뉴에는 라면이 따로 없네요. 어떻게 된 걸까...
물은 정수기에서 직접 가져오는 셀프 서비스.
테이블마다 비치되어 있는 통에는 옛 다방답게 설탕이 비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내 맛있는 라면 냄새와 함께 을지다방의 대표메뉴이자 히든메뉴,
'직접 끓인 라면(3,000원)' 이 도착했습니다.
. . . . . .
을지다방의 '라면' 은 아침 시간대에만 맛볼 수 있으며 오전 11시까지만 판매하는 히든 메뉴입니다.
다방에서 라면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아주 간단해요. 을지로로 출근하는 근로자들이 아침 일찍 나오느라
아침식사를 못 하고 출근하는 경우가 많아, 밥을 못 먹은 이 사람들에게 가볍게 아침식사를 제공해주고자
라면을 직접 끓여 판매했던 것이 지금은 아예 11시까지 판매하는 고정 메뉴로 자리잡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라면을 정말 맛있게 끓인다는 것이 입소문이 퍼지면서 아침 11시까지 파는 히든 메뉴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근처 근로자들은 물론 일부러 라면을 먹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을지다방을 대표하는 메뉴가 된 것이지요. '한국인의 밥상' 프로그램에도 이 라면이 소개되었다고 해요.
참고로 제가 을지다방의 라면을 알게 된 계기는 유튜버 '빅페이스' 의 이 영상 때문이었습니다.
빅페이스는 얼마 전 남산돈까스 폭로를 통해 급격하게 유명해진 유튜버기도 하지요.
(서울 라면 맛집의 비법은 바로 낱개 판매 라면?!! : https://www.youtube.com/watch?v=bcc8N4iJ2h0&t=474s)
을지다방의 아침 히든메뉴 라면의 가격은 한 그릇 3,000원.
사진과 같이 큼직한 냉면그릇 위 계란을 듬뿍 풀어넣은 라면을 한 그릇 가득 끓여주는데
방송에 나오고 사람들에게 알려져 유명해진 이후에도 가격을 올리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침에 라면을 판매하는 하는 이유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말하는 것 같아요.
직접 끓인 라면 한 그릇을 3,000원에 파는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라면 먹고 양 모자라면 밥 말아먹으라고 추가요금 없이 공기밥도 담아주었습니다.
반찬은 김치 한 가지가 전부.
제가 원래 김치는 겉절이, 혹은 양념이 진한 덜 익은 김치를 선호하는 편이고
신김치는 사실 찌개나 김치전으로 먹지 않는 한 일부러 찾아먹을 일 없을 정도로 안 좋아하는 편인데
을지다방에서 나오는 김치는 제대로 신 김치입니다. 평소대로라면 제 의지로 젓가락이 갈 일 없는 김치에요.
그런데 이 김치가... 제가 싫어하는 신김치인데도 불구하고 진짜 묘하게... 젓가락이 가게 되는 맛이더군요.
유튜브 방송에도 나왔지만, 을지다방의 라면은 신라면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맛을 고집하고자 번들로 나오는 5개들이 팩 신라면이 아닌 돈을 더 내서라도 낱개를 고집한다고 해요.
번들로 나오는 제품은 낱개로 사는 것보다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사장님의 철학(?)이라고 하는데,
(실제 농심 관계자에게 확인해보니 번들과 낱개의 맛 차이는 없다고 합니다) 그냥 이건 실제 맛 차이는 없지만
그냥 사장님께서 꾸준히 밀고 있는 신념이라 좋게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뭐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익히 우리가 잘 아는 계란 풀어 끓인 적당히 얼큰한 신라면 맛이에요.
그런데 라면을 정말... 진짜 맛있게 잘 끓였습니다. 면의 익힘, 국물에 계란을 풀은 수준 모든게 너무나도 절묘해요.
면은 꼬들꼬들함보다는 조금 푹 끓여 부들부들함 쪽에 가까운데, 얼큰한 국물을 되게 잘 흡수한 느낌입니다.
특별히 이 라면에 뭔가 더 숨겨진 비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맛도 딱 예상할 수 있는 신라면 맛이긴 합니다만,
진짜 맛있네요. 저는 동일한 재료, 같은 방법으로 끓여도 절대 이렇게 라면을 못 끓일 것 같습니다.
게다가 신김치, 원래 싫어해야 정상인데, 이 라면에 어떻게 이렇게 절묘하게 잘 어울리던지...ㅋㅋ
국물이 너무 좋아서 밥을 말지 않을 수가 없겠더군요.
쫄깃쫄깃한 면도 좋았지만, 이 국물에 말아먹는 밥이 몇 배는 더 맛있었어요.
계란이 과하게 풀어지지도 또 너무 덜 풀어지지도 않은 적당한 수준으로 걸쭉하게 잘 풀어져 있어
얼큰한 계란국과도 같은 느낌이라 밥 말아먹기에 가장 좋은 최상의 국물 상태가 만들어지더군요.
아침에 라면 한 그릇, 거기에 밥까지 먹으니 진짜 속이 든든합니다.
일찍 일하는 근로자들이 다방에서 든든하게 즐길 수 있는 아침식사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던 시간.
음료 메뉴와 병행하기 번거롭고 또 매장 전체에 라면 냄새가 퍼지는게 썩 좋지 않을 건데도 불구하고
계속 라면 메뉴를 유지하는 건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아닌, 정말 라면 먹으러 오는 근처 단골들을 위해서,
혹은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게 즐거워 그런 것이라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참고로 라면을 팔긴 해도 이 곳은 엄연히 다방, 매장 내에 하루종일 라면 냄새가 풍기는 건 좋지 않기 때문에
라면 판매는 11시까지만 한다고 합니다. 11시 이후에는 라면 없이 일반 차 메뉴만 판다고 해요.
라면만 먹고 갈 순 없어, 디저트 개념으로 '쌍화차(5,000원)' 도 주문했습니다.
다들 쌍화차를 마시니 나는 다른 걸 먹을까 생각했지만, 역시 처음 왔을 땐 대표 메뉴를 주문해야...
그나저나 식사 가격이 3,000원에 음료가 5,000원이니, 졸지에 밥보다 비싼 음료를 마신 셈(...)
을지다방의 쌍화차 위엔 샛노란 계란 노른자 한 알이 얹어져 있습니다. 일명 계란동동 쌍화차.
계란노른자는 터뜨리지 말고 쌍화차 아래에 살짝 담가 동글동글하게 굴려가며 표면을 살짝 익힌 뒤
숟가락으로 들어올린 뒤 입안에 쏙 집어넣으면 됩니다. 별도의 설명 없이 이렇게 굴려먹으니
그 모습 지켜보던 주인 아주머니께서 먹는 법 아주 잘 안다며 칭찬해주시던(...!!)
쌍화차가 아닌 쌍화죽이라 해도 될 정도로(?) 건더기가 정말 많이 들어있는데요,
이 정도면 차로 마시는 게 아니라 숟가락으로 건더기를 떠 먹는 죽, 혹은 국물이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내용물 많이 들어간 쌍화차는 적어도 제가 겪어본 쌍화차 중에선 확실히 없군요.
쌍화차 안에는 잘게 썬 대추와 땅콩가루, 그리고 잣이 듬뿍 들어있습니다.
진한 쌍화의 쌉쌀달콤한 맛이 커피와는 다르게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기분.
날씨가 더워 감기같은 것도 없지만 괜히 몸 따뜻해지면서 감기가 떨어져나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엄청 진하고 농후한 맛의 쌍화차를 한 번 마셔보고 싶다면 을지다방의 쌍화차를 꼭 마셔볼 것을 권합니다.
라면부터 쌍화차까지, 호기심을 갖고 찾아간 다방이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너무 만족.
오래 된 옛 다방의 정취를 갖고 있는 분위기부터 처음 갔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단골손님 맞은 것처럼
사근사근하게 대해주시던 붙임성좋은 사장님, 거기에 맛있는 라면과 쌍화차까지 모든 게 완벽했습니다.
근처로 차 배달도 나가는 듯, 매장에 손님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잠깐 다녀온다고 말하곤
쟁반에 온수병과 커피병, 머그잔을 올린 뒤 보자기에 싸서 잠깐 밖으로 나갔다오기도 하더라고요.
손님들을 믿고 가게 문 안 잠그고 자유롭게 왔다갔다 하는 건, 하루이틀 장사로 만들어진 신뢰가 아니겠지요.
카페와는 다른 분위기의 정겹고 즐거운 아침 시간을 만끽할 수 있었던 '을지다방'
집에서 거리가 있으니만큼 일부러 라면 먹으러 일찍 오진 않겠습니다만, 근처에 약속이 잡히면
밥 먹고 차 한잔 하러 이 곳에 또 찾아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는 한 번 인삼차나 생강차도 마셔보아야겠어요.
을지로3가 지하철역 5번 출구에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을지로3가 역에서 내려 밖으로 나와 길을 못 찾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 같군요.
같은 건물 안에 오래 된 냉면 노포인 '을지면옥' 이 있습니다.
작년에 을지면옥 건물에 대한 재개발 이슈가 있어 시끌시끌한 적이 있었는데,
만약 이 건물이 재개발되게 된다면 자연스레 같은 건물에 있는 을지다방도 함께 사라지게 되겠네요.
영원한 것은 없기에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이 건물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이 풍경도 사진으로밖에 보지 못할 날이 오겠지만, 그래도 조금 더 이 분위기 오래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조금...
정말 청명하게 맑았던 지난 5월 석가탄신일 오전의 청계천.
평일과 달리 주말 오전의 청계천은 되게 평화롭고 또 한적한 분위기.
삭막한 강남 업무지구와 달리 강북 도심엔 청계천과 함께 녹지가 마련된 모습이 가끔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근처 직장인이라면 밥 먹고 한 번 산책하고 들어가기 딱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은 그래도 마스크를 끼고 돌아다녀야 하긴 하지만...
청계천을 중심으로 쭉 이어져 있는 고층 건물들.
같은 업무지구임에도 불구하고 강남, 그리고 을지로 일대 분위기는 은근히 다른 점이 꽤 많은 듯 합니다.
나이가 서서히 들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강남보단 강북 쪽 풍경을 보는 게 좀 더 편안하긴 하더군요.
※ 을지다방 찾아가는 길 : 지하철 2, 3호선 을지로3가역 5번출구 하차, 을지면옥 건물 2층
2021. 6. 10 // by RYUN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