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의 '페르시안 궁전' 이라고 하면 '뭐야, 그 가게 아직도 살아있었어?' 라며 놀라는 분이 꽤 있을 것 같습니다.
SNS가 아직 덜 발달하고 소위 '맛집' 이라는 개념이 그렇게 정립되지 않았을 때부터
대학로 성균관대 정문 근처에서 '매운 인도식 커리와 이란식 케밥' 을 판매하는 페르시안 궁전이 지금도 절찬 영업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오래간만에 옛날 생각이 떠올라 한 번 가 보고 싶어져 몇주 전 금요일 저녁, 지인분과 함께 찾게 되었습니다.
처음 페르시안 궁전이라는 가게의 존재를 알게 된 게 2005년인가 그랬습니다. 군대 첫 휴가 나왔을 때였는데요,
지금이랑 달리 그 당시엔 저는 매운 걸 엄청 잘 먹었고 그냥 매운게 아닌 '도전용' 매운맛을 뭔가 홀린듯 찾고 다녔던 시기였습니다.
그 때 엄청 매운 카레전문점으로 페르시안 궁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찾아가 호기롭게 4.5단계 카레를 도전했었고,
어찌어찌 겨우 다 먹긴 했습니다만 거의 실신 직전까지 가 친구 부축 받으며 배스킨라빈스 가서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겨우 정신을 차렸던 추억(...?)이 있습니다. 그 뒤로도 이 가게를 몇 번 더 찾긴 했었지만 매번 갈 때마다 매운맛에 당하면서도
또 도전하고 또 도전하고 했었는데요, 가장 마지막 방문 이후 거의 7~8년만에 다시 이 가게를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사진에 뵈는 아저씨가 페르시안 궁전의 주인인 '미스터 샤플'
간판이라든가 모든 게 몇년 전 마지막으로 갔을 때와 큰 차이 없이 그대로인 모습이라 좀 놀랐습니다.
와 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가게 입구가... 엄청 정신없는데요...
보통 방송 나온 가게들이 방송 나온 화면을 캡처해서 액자로 걸어놓는 거야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긴 한데...
이렇게 도배 수준으로 많이 걸어놓는 경우는... 없지요. 그냥 한쪽 벽 전체가 방송출연 액자로 도배 ㅋㅋ
다른 의미로는 예전 처음 왔을 때와 크게 바뀌지 않은 한결같은 모습에 안심하며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직 안에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입구부터 좀 정신 산만하긴 해요ㅋㅋㅋ
그런데 여기는 뭐랄까... 그런 산만한 분위기가 감점이 아니라 오히려 '그대로네' 라는 느낌으로 안심이 드는 기분.
매장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벽에 각종 메뉴판과 가격표를 일관성 없이 붙여놓은 것도 처음 이 곳을 왔을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
문득 요즘은 이런 거 볼 때마다 골목식당이 떠오르면서 백선생이 와서 이걸 보면 무슨 말을 할까... 라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이 글씨체와 이 감성은 진짜 2000년대 초반도 아니고 90년대 중반 감성...ㅋㅋ
메뉴판을 한 컷. 커리 종류가 매우 다양한 편인데 기본적으로 가격대가 좀 있는 곳입니다.
제일 싼 야채카레가 9,000원이긴 하지만 그 외의 카레들은 대부분 1만원대 초반에 가격이 형성되어있다고 보시면 될 듯.
대부분의 카레는 매운맛을 조절할 수 있는데, 예전엔 저 '상담을 원합니다' 라는 단계가 5~10단계까지 있었는데
단계가 좀 많이 완화되어 지금은 4~7단계가 상담을 원하는 단계입니다.
추천하는 단계는 보통 2.2에서 2.5정도. 제가 마지막으로 갔을 때가 3단계 도전이었는데, 그것도... 엄청 힘들었습니다.
...참고로 2005년, 처음 이 가게 와서 친구 부축받고 나왔을 때 도전한 게 4.5단계였습니다.
그 때 첨에 호기롭게 6단계를 주문했는데 샤플 아저씨가 와서 '이거 안돼요, 사람이 먹을수있는 게 아니에요' 라며 만류했던 기억이...
기본 식기 세팅.
반찬으로는 단무지와 시판 오이피클, 두 가지가 나옵니다.
오래간만에 와서 뭐 먹을까 고민하다 주문한 커리는 '양갈비 커리(16,500원)'
기본적으로 모든 커리는 난과 밥 선택 옵션 없이 밥과 함께 나옵니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기 쉬운 밥과 커리가 따로 담겨나오는 인도식 커리와 달리 한국식 카레라이스처럼 담겨나오는 것이 특징.
뼈가 붙어있는 구운 양갈비 두 덩어리가 얹어져 나옵니다.
커리의 매운 정도를 2.2로 했는데, 딱 알맞은 적당한 매운맛이네요.
이제는 더 매운 맛 도전은 힘듭니다. 그냥 매운 거 먹고 고생할 바엔 편하고 맛있게 먹는 게 좋아요.
조금 한국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약간 개량을 한 맛인데, 밥과의 조화도 잘 어울리는 편이라 나름 맛있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방문시 네이버 예약 시스템을 이용해 사전 예약을 하고 방문했는데,
네이버 예약을 하고 간 손님들에게는 테이블당 하나씩 난을 서비스로 제공한다고 하여 서비스 난을 하나 받았습니다.
제가 선택한 난은 표면에 마늘 후레이크 다진 게 살짝 들어있는 갈릭 난입니다.
보통 커리전문점에서 난은 기본 플레인 이외에 버터 또는 마늘을 넣은 난이 있는데, 마늘 넣은 난이 상당히 맛있지요.
역시 밥과 함께 먹어도 좋지만, 커리는 이 난에 찍어먹는 걸 정말 좋아합니다.
페르시안 궁전이야 커리에 기본으로 나오는 게 밥이긴 하지만, 만약 밥과 난 중 선택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주저없이 난 선택.
커리 소스와 함께 먹는 양갈비도 누린내 없이 적당히 잘 구워내어 괜찮게 즐길 수 있었고요.
다른 음식점의 커리에 비해 객관적(?)으로도 가격이 조금 센 편인데, 맛 자체는 만족스러워서 다행이었습니다.
양갈비 커리 말고도 좀 더 낮은 가격대에 즐길 수 있는 양고기 커리도 있으니 그 쪽을 주문해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이번에는 매운 커리를 선택하지 않은 덕에 고통스러움 없이 깔끔하고 기분좋게 클리어.
항상 올 때마다 뭔가 홀린듯 매운 커리에만 도전했는데, 매운 거 도전 않고 평범한 걸로 먹으니 너무 편하군요.
디저트 메뉴로 '마약 아이스크림(3,500원)' 이라는 것이 있어 한 번 주문해 보았습니다.
양갈비 커리에 아이스크림 후식을 더하니 딱 2만원으로 마무리되어 깔끔하게 끝나는 것도 있었고
'마약 아이스크림' 이라는 건 대체 뭘 넣어 그 이름을 붙인걸까? 라는 궁금증이 든 것도 있었거든요.
일단 '마약 아이스크림' 은 계란 노른자처럼 샛노란 모양으로 나왔는데요...
어디선가 한 번 맡아보았던, 그런데 그 정체가 뭔지 가물가물한 독특한 향과 풍미가 느껴지는데
이 풍미의 정체는 바로 '샤프란' 의 향기. 입 안에서 진하게 퍼지는 샤프란의 향이 생소하면서도 꽤 매력적.
커리를 먹고 난 뒤에 마무리로 아이스크림까지 먹으면 딱 기분좋게 마무리가 가능합니다.
다만 샤프란의 향이 꽤 강한 편이라 독특한 걸 도전하는 사람들에겐 추천하지만 향에 거부감있는 분은 좀 어려울 수도 있겠네요.
다 먹고 난 뒤에 계산대에 있는 샤플 아저씨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는데(한국어 잘 하십니다)
코로나19 사태때문에 주변 가게들을 비롯해서 본인도 많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방문했을 당시가 31번 확진자가 막 등장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확진자가 늘어나기 시작했을 시기였거든요.
그래서 금요일 저녁에 대학로를 갔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이 금요일 저녁 맞나 싶을 정도로 한산한 분위기가 굉장히 낯설었는데,
지금은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그 때보다 더 힘들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도 생기는군요.
샤플 아저씨도 벽화에 보이는 사진과 달리 지금은 세월이 지나 나이가 꽤 들었습니다.
바뀐 것 없이 모든 게 그대로인 것 같아도 사람을 보면 그때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 합니다.
카레 자체도 좋았습니다만, 사실 그것보다도 예전에 갔던 추억을 더듬으면서
정말 오래간만에, 한창 인터넷 활동을 왕성하게 했던 2000년대 초, 중반의 감성을 떠올리면서 그 때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던 게
더 좋았던 시간으로 기억합니다. 나쁘게 얘기하면 변화나 발전이 없다고 해석될 수도 있지만
가끔은 이렇게 옛 모습 그대로 변함없이 한결같다는 게 굉장히 고맙고 또 다행이라 생각될 때도 있거든요.
페르시안 궁전 바로 맞은편이 성균관대학교 정문입니다.
그래서 혜화역에 내리고 나서도 꽤 많이 걸어 들어와야 하는 곳.
성균관대 안에 '명륜진사갈비 명륜당점' 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문 바로옆에 있네요(...) 심지어 본점;;
명륜진사갈비의 '진사' 의 의미가 성균관 유생들이 식사를 하던 '진사식당' 에서 따온거라 하니
어찌보면 성균관대 앞에 명륜진사갈비가 있는 게 말이 아주 안 되는 게 아니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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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부터 폐업이나 위치이동 없이 꾸준히 그 자리 그대로 지키고 있는 대학로의 '우리오락실'
수도권에 옛날부터 계속 한 자리에서 게임센터를 영업하는 곳이 10곳도 채 남지 않았을텐데, 그 중 하나가 이 곳입니다.
정말 뜬금없이 이 곳에 'BeatmaniaIIDX' 라이트닝 기체 한 대가 들어가 가동중이라 구경 차 방문했습니다.
현재 서울, 수도권에 이 기체를 가동하는 게임센터는 단 네 곳 뿐인데요,
차례대로 부천어택, 노량진 어뮤즈타운, 한성대 우리오락실2, 그리고 본 매장인 대학로의 우리오락실1입니다.
다른 세 곳이야 워낙 매니아 유저가 많아 납득이 가지만, 여긴 다들 좀 뜬금없다는 반응이라 어떻게 넣은건지 궁금하긴 합니다...ㅋㅋ
커리 먹고 나온 뒤 대학로 맞은편의 한 카페에서 티 타임.
'팩토리 엠' 이라는 카페로 원래 다른 유명한 매장을 가려했으나 만석이라 여기로 이동.
음료 가격은 5~6천원대로 약간 센 편에 속하는 곳.
여기서 굉장히 마음에 드는 음료를 발굴해냈는데요, 이 음료의 이름은 '쑥 라떼' 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커피대신 쑥을 집어넣고 만든 라떼인데, 달콤한 폼크림과 쌉싸름하고 향기로운 쑥의 향이 너무 잘 어울리는군요.
다른 곳에서는 맛보기 힘든 독특한 매력이 있기도 하고 또 이 쑥향이 너무 취향이라 정말 맛있게 마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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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르시안 궁전 찾아가는 길 : 지하철 4호선 혜화역 4번출구 하차, 성균관대학교 정문 맞은편 위치
2020. 3. 8 // by RYUN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