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1박2일 후쿠오카 나들이
(17) 하카타 돈코츠라멘의 또다른 뿌리, 새벽까지 영업하는 간소 나가하마야(元祖長浜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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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게임을 자정까지 할 줄은 몰랐지;;;
그냥 적당히 하고 들어가려 했는데 막상 하다보니 너무 재밌어서 몰입하다보니 지하철은 거의 다 끊겨있고 뭐 그런 상황.
그래도 어떻게 텐진역에서 딱 하나 남은 공항선 막차를 타고 한 정거장 바로 다음역인 아카사카역까지 겨우 가긴 했다.
사실 숙소가 있는 오호리공원역까지 가는 것도 가능했지만 신나게 뛰고 놀고나니 약간 뱃속이 허전해서...^^;;
가고자 하는 가게가 하나 더 있는데 여기가 지하철로 접근할 수 없는 정말 애매한 위치라 지하철역에서 내려서도
조금 더 걸어가야 하는데, 그나마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이 공항선 아카사카역이라 여기서 내려 좀 걸어가기로 했다.
5월의 후쿠오카 밤거리는 너무 춥지도 그렇다고 덥지도 않고 딱 걸어다니기 좋은 날씨다.
이미 게임으로 인해 온 몸은 땀으로 완전히 범벅이 되어버렸지만(...) 뭐 어때. 사람들끼리 부대끼는 것도 아닌데.
아카사카 역에서 내려 북쪽으로 한참을 걸어 도착한 한 가게.
이미 자정을 넘어 새벽으로 다가가고 있는 지금, 모든 가게가 다 문을 닫았고 편의점 외엔 남은 곳이 없지만
그 와중에 이 가게 하나만큼은 아직 불빛을 밝힌 채 절찬리 정상 영업 중이다.
가게 이름은 '간소 나가하마야(元祖長浜屋)'
구글지도 링크는 여기 : https://maps.app.goo.gl/j2iZibCnd2m3ZUhT6
간소 나가하마야는 후쿠오카에 있는 일본라멘 전문점으로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뽀얀 국물의 하카타 돈코츠 라멘과
조금 다른 스타일의 라멘을 선보이는 곳이다. 하카타 돈코츠 라멘의 두 개의 뿌리 중 하나가 바로 '나가하마 라멘' 인데
현재의 하카타 라멘으로 유명한 돈코츠 라멘은 후쿠오카 나카스의 포장마차거리에서 발전하게 된 뽀얀 국물의 라멘이며
이번에 내가 먹으러 가는 이 가게의 나가하마 라멘은 이와 반대로 맑은 국물을 이용해 만드는 돈코츠 라멘이라고 한다.
보통 관광객들은 물론 외국, 그리고 일본 내에서도 후쿠오카 이외의 타 지역에서의 '돈코츠 라멘' 하면
뽀얀 국물의 돼지뼈를 우려낸 진한 진국 육수를 생각하기 쉬운데 이런 맑은 육수의 또다른 뿌리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음.
나가하마 스타일의 라멘은 여기 말고도 운영하는 집이 좀 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한국인들에겐
이 집이 제일 유명할 것이다. 지하철역에서도 멀리 떨어져있어 한참 걸어가야 하는 접근성 나쁜 이 곳이 왜 유명해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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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양반이 왔다 가셨거든(...)
백종원의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후쿠오카 편에서 라멘집으로 찾아갔던 곳이 바로 여기, '간소 나가하마야' 다.
실제 방송분은 이거. 백종원의 소감으로는 '술이 확 깨는 맛' 이라고...ㅋㅋ 그러니까 해장용 라멘으로 좋은가보다.
https://www.youtube.com/watch?v=3df92w-Ia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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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근데 이 가게가 진짜 술 먹고 난 뒤 해장용으로 특화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게, 가게 영업시간 때문이기도 한데...
영업시간이 진짜 말도 안 되게 길다. 사실상 이 정도면 거의 24시간 영업과 견주어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일단 오전 05:00시에 오픈, 그리고 마감 시간인 25:45 저거 다음날 새벽 1시 45분까지 영업한다는 뜻이다.
즉 새벽 1시 45분부터 5시까지, 약 세 시간 정도만 문을 닫고 그 이외의 시간에는 항상 열려있다는 것. 게다가 연중무휴!
위치가 애매해서 좀 걸어가거나 택시를 타야 하는 문제가 있지만, 텐진 시내에서 밤 늦게까지 신나게 놀고 난 뒤 들러서
가볍게 라멘 한 그릇 하고 숙소로 들어갈 수 있는 정도.
메뉴는 라멘(550엔) 한 가지가 전부. 나머지는 면사리, 고기 등의 사이드 메뉴, 그리고 생맥주와 컵술을 말하는 듯한 주(酒).
현금 결제만 가능하며 매장 앞에 무인 자판기가 있어 저기다 돈을 넣고 주문을 하면 된다.
자판기에서 주문 후 나온 식권.
가운데 절취선을 따라 자른 뒤 직원에게 한 쪽을 주고 적당히 빈 자리 잡아 앉으면 된다.
주방이 오픈되어 있어 밖에서 라멘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꽤 나이드신 주인... 인지는 모르겠지만 노인 한 분, 그리고 젊은 직원 둘이 근무하고 있더라.
아무래도 이런 곳은 혼자서 새벽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나와있는 건 불가능하니 직원들이 번갈아가며 근무하고 있겠지.
밖에서 본 라멘 주방의 모습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굉장히 깨끗한 편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자신있게 오픈할 수 있구나.
뜨거운 국물 제공하는 가게니만큼 애들 뛰어나니지 않게 조심하라고...
근데 여기 가게 분위기상 아이들 데리고 올 만한 곳은 아닌 것 같긴 하지만...
벽에도 메뉴판이 붙어있는데 정말... 심플하다.
그리고 진짜 가격 저렴한 것도 너무 좋다. 라멘 한 그릇이 550엔. 우리 돈으로 5,000원이 채 안 된다니.
엔저 영향도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한민국 외식물가가 워낙 올라 이젠 이런 게 굉장히 저렴하게 느껴지는 상황.
테이블에 찻주전자와 함께 각종 소스통, 그리고 초생강통과 젓가락, 이쑤시개 등이 비치되어 있는데
두 종의 소스통에는 각각 후추, 그리고 참깨가 들어있으며 오른쪽의 커다란 플라스틱 바구니엔 찻잔이 담겨 있었다.
사진에 보이는 은색 주전자가 찻주전자가 아님. 그 뒤에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양은주전자가 찻주전자다.
저거 들고 차 따를 때 엄청 무거워서 조금 고생;;
대충 알아서 꺼내 쓰면 된다.
주전자 안에 들어있는 것은 녹차.
찻잎을 잘 거르지 않았는지 찻잎 가루가 꽤 많이 떠다니는 편이긴 했는데 다행히 먹는데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음.
나가하마 라멘(550엔) 도착.
'간소 나가하마야' 로고가 새겨진 전용 그릇에 라멘이 담겨나오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돈코츠 라멘과 좀 느낌이 다르다.
일단 이것도 국물이 돼지뼈를 우려낸 거라 좀 뽀얗게 보이긴 한데, 돼지국밥 같은 새하얗고 불투명한 뽀얀 국물이 아닌
어딘가 기름지면서도 꽤 맑아보이는 국물. 그리고 그 위에 고명은 얇게 썬 돼지고기, 채썬 파가 전부다.
그 안에는 돈코츠 라멘을 먹을 때 많이 사용하는 가느다란 면이 들어있다.
처음 들어가서 식권 건네줄 때 면 삶기를 물어보는데 나는 딱딱한 면을 꽤 좋아하므로 '카타(덜 삶은)' 면으로 주문.
오, 이게 후쿠오카 돈코츠 라멘의 또다른 뿌리라고...? 이런 맛이 다 있네.
일단 이것도 돼지뼈 육수 계열이라 국물에 기름이 둥둥 떠 있긴 한데 떠 있는 기름의 양에 비해 묵직하지 않고 가볍다.
일반적인 진한 돈코츠 라멘에서 느껴지는 그 특유의 진한 기름맛, 혹은 돼지냄새는 거의 느껴지지 않고
굉장히 가볍고 깔끔하게 넘어가는, 하지만 국물의 진한 존재감만큼은 확실히 각인되는 그런 느낌이었다. 짠맛은 꽤 센 편.
뭐랄까 일반적인 돈코츠 라멘을 진한 돼지국밥이나 순대국밥에 비유한다면 이건 맑은 곰탕을 먹는 듯한 느낌.
오히려 돼지 누린내 진한 돈코츠 라멘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이 이걸 선택하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어느 정도 면과 국물을 순정으로 먹어본 후 테이블에 있는 각종 양념들을 더해 포인트를 주기 시작.
일단 참깨를 듬뿍 넣고 후추도 살짝 뿌렸으며 유일한 찬이라 할 수 있는 초생강(베니쇼가)도 한쪽에 듬뿍 얹었다.
요시노야 등의 규동집에서 나오는 그 초생강처럼 단맛 없이 매운맛과 상쾌함만 있는 초생강인데
일본 식당의 라멘집에서는 별도로 김치나 단무지 같은 찬을 주지 않기 때문에 이 초생강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어우, 근데 이거 진짜 맛있어.
막 눈이 휘둥그래해질 정도의 그런 맛있음과는 방향이 다르지만 계속 먹게 만드는 부담없는 매력이 진짜 좋음.
무엇보다 게임 신나게 하고 온몸이 땀에 절여진 피곤한 상태로 걸어와서 먹는 거라 뜨끈한 국물 들어가니 더 기분이 좋다.
불에 구운 두껍고 야들야들하게 씹히는 일반적인 돼지고기 차슈가 아닌 얇게 썬 살코기를 여러 점 올린 차슈인데
오히려 차슈를 이렇게 얇고 조그마하게 여러 점 썰어 내어주니 라멘이 아닌 돼지국밥의 살코기 건져먹는 느낌이었다.
그래 그 느낌이야. 부산에도 돼지국밥 보면 뽀얀 국물이 있고 많지는 않지만 맑은 국물로 내는 집 있잖아.
그것과 직접적인 비교는 조금 어렵겠지만 맑은 국물의 돼지국밥을 먹으면 이것과 비슷한 기분이 들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잘 먹었습니다.
이거 해장용 맞네...ㅋㅋ 텐진에서 술 진탕 마시고 얼굴 벌개진 상태로 와서 한 그릇 하면 술이 확 깰 것 같은 느낌이다.
게다가 새벽 5시에 오픈을 하니 술 먹고 들어와서 한잠 푹 자고 새벽에 일어나 해장하는 것으로도 괜찮을 듯 하고.
가게 바로 앞에 자판기가 설치되어 있는데, 라멘 먹고 난 뒤에 입가심하란 뜻일지도.
가게 건물 안쪽으로 설치된 자판기니 아마 매장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거겠지.
사실 얼마 전 블로그를 통해 이 '간소 나가하마야' 의 인스턴트 버전 봉지라면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그 라멘을 먹은 시점이 이 여행을 다녀온 이후라 맛 비교를 하면서 즐길 수 있었는데 완전히 재현을 한 것까진 아니더라도
그래도 이 특유의 국물 맛을 어느 정도 재현했다는 점에서 꽤 높은 점수를 줄 만 했다.
일본의 타 지역, 혹은 해외에서 이 라멘의 맛이 궁금하다면 그 봉지라면을 어떻게든 구해서 먹어보는 것도 방법일 듯.
하지만 후쿠오카 쪽에 놀러온다면 항상 가는 이치란, 잇푸도도 좋지만 시간을 내어 여기를 찾아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일단 내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후쿠오카의 '돈코츠 라멘' 과는 다른 뿌리의 이런 라멘도 있다는 경험을 할 수 있으니까...
(간소 나가하마야 인스턴트 봉지라면 : https://ryunan9903.tistory.com/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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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2. 11 // by RYUN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