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3호선 을지로3가역 8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앞에 자그마한 식당 하나가 있습니다. '동경우동' 이란 곳이에요.
정확히 언제 열었는지 모르겠지만 4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노포 우동집이라고 합니다.
여기 꽤 유명한 집인데 아주 예전에 한 번 방문해서 우동카레콤비를 먹고 반했던 기억이 있었지요.
원래 을지로 쪽에서 친구와 가려 했던 가게가 있었는데 거기가 재료소진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어디 갈까 고민하다가
불현듯이 곳이 가깝다는 게 생각나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이 날 비가 좀 와서 엄청 습하고 더운 날이었습니다.
딱 봐도 노포의 범접하기 힘든 포스(?)가 느껴지는 메뉴판. 저 아래의 '유명한 집, 동경우동집' 이라는 로고는
진짜 지금 감성에서 나올 수 없는... 옛날 가게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문구이자 글씨체입니다.
그리고 뭣보다 이 가게의 가장 큰 장점은 음식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인데요, 기본 우동 가격이 4,500원부터 시작,
가장 비싼 우동카레콤비(우동과 카레라이스가 함께 나옵니다) 가격도 단돈 7,000원밖에 하지 않습니다.
주류는 단 한 가지, 정종만 팔고 있어요.
기본 식기 준비. 우동을 시켰기 때문에 숟가락은 따로 없어요.
반찬으로는 깍두기와 단무지, 그리고 요즘으로선 상당히 귀한 반찬인데... '오이지' 가 나옵니다.
네모난 접시에 소박하게 담겨있는 저것, 오이피클이 아니라 진짜 그 오이지입니다. 정말 오래간만에 먹어보네요.
맛은 살짝 쿰쿰하면서도 짭짤한 맛. 피클의 새콤한 맛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조금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유부초밥을 하나 시켰는데 찍어먹으라고 겨자 뿌린 간장이 함께 나오네요.
유부초밥(4,500원)
총 여섯 개의 유부초밥이 쟁반에 담겨나옵니다.
검은깨와 채썬 당근을 넣어 만든 유부초밥은 정말 집에서 만들어먹는 그 맛이에요.
달콤한 유부,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초를 넣어 살짝 새콤달콤한 맛이 나는 밥의 조화는 너무나도 집에서 먹는 맛.
우동 먹을 때 하나 곁들이면 훨씬 맛있게, 그리고 든든하게 즐길 수 있는 매력만점의 사이드.
예전에 여기 처음 왔을 때 '카레우동콤비' 를 시켜먹었는데 이번엔 '오뎅우동(5,000원)' 을 시켰습니다.
진짜 여기 다시 오게 되면 이 오뎅우동을 꼭 먹어보고 싶었거든요. 그릇 안에 우동, 그리고 각종 어묵이 듬뿍 담겨나옵니다.
꽃어묵은 물론 맛살, 삶은계란, 거기에 큼직한 곤약까지 집어넣는 게 너무나도 90년대 우동 그 자체라 반가웠어요.
게다가 적당히 뿌린 파,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김가루까지... 진짜 요새 일본식 우동에서는 맛볼 수 없는 한국식 우동!
얼마 전 블로그를 통해 우불식당 우동을 소개하며 쑥갓향 강한 게 한국식 가락국수 같다고 이야기한 적 있었잖아요.
저는 이런 스타일의 우동을 그것과 함께 90년대 한국의 우동을 양분했던 또 다른 장르 중 하나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위에 고명으로 조금 얹은 게 유부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유부가 아닌 튀김가루더라고요.
국물을 듬뿍 머금어서 굉장히 촉촉하하고 기름지게 씹히는데 이거... 꽤 달짝지근한 맛이 납니다. 국물이 꽤 달큰해요.
요새 자가제면을 통해 퍼지고 있는 일본식 카케우동 전문점의 그 국물과는 궤를 달리하는 살짝 탁하고 진한 단맛.
진짜 국물 하나만으로도 뭔가 사라져서는 안 될 역사의 유산으로 지정해야 할 것 같은 느낌.
면 또한 쫄깃함보다는 부들부들하고 부담없이 즐기기 좋은 식감.
쫄깃하고 탄력 강한 떡 같은 식감의 우동도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부들부들한 식감이 부담없어 좋을 때가 있지요.
매화 모양의 꽃이 그려진 이 어묵도 정말 오래간만에 봐요. 아주 없진 않겠지만 요새 꽤 귀한 어묵 아닌가...
삼진어묵 같은 프리미엄 어묵 브랜드에서도 이런 어묵은 안 만드는 것 같은데... 그리고 그 뒤의 깨알같은 맛살.
사실 우동의 양이 그렇게 많진 않습니다. 소식가 기준으로는 충분할 수 있겠지만 저 같이 많이 먹는 사람에게는
다소 모자라다고 느낄 만한 양이에요. 그래도 어묵만큼은 정말 풍족하게 들어있어 이 부분은 전혀 아쉽지 않더군요.
여기 우동만큼은 정말... 오래 유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가격 저렴한 것도 저렴하지만 진짜 요새는 어딜 가든
이런 우동 만나보기 정말 힘들거든요. 아니 제가 아는 범위 안에서 24시 즉석우동 파는 집에서도 이런 맛은 나지 않을듯.
저는 비록 습하고 더운 여름에 방문하여 에어컨이 빵빵했음에도 즐기기에 조금 덥긴 했으나
이 우동만큼은 정말 추운 겨울에 먹어야 진가를 제대로 발휘할 것 같은 느낌. 날 선선해지면 또 한 번 와야겠습니다...ㅎㅎ
PS : 여기 카레, 일본식 카레 아니에요. 너무나도 솔직한 오뚜기카레 그 자체입니다. 카레가 완전히 샛노란 황금색ㅋㅋ
. . . . . .
우동 먹고난 뒤 명동으로 이동.
명동 거리에 있는 서서 마시는 에스프레소 바 '리사르 커피' 를 함께 한 친구에게 안내해주고 싶어 찾아갔습니다.
여기는 서서 마시는 스탠드 바, 그리고 앉아서 마시는 테이블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 테이블에서 주문할 경우
테이블 추가 요금이 붙어 서서 마시는 것보다 더 비싼 금액을 지불해야 해요. 다만 그렇다고 폭리를 취하는 건 아니고
테이블 앉아 마시는 가격이 일반적인 카페의 가격, 서서 마시는 건 그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에스프레소를 제공합니다.
에스프레소 샷 한 잔 가격이 단돈 1,500원!
그 외에 에스프레소에 다른 것을 더한 바리에이션도 2,500원을 넘는 게 없어 정말 가볍게 호로록 마시고 갈 수 있습니다.
따로 요청을 하지 않으면 기본적으로 에스프레소 샷(1,500원)에 설탕을 넣어줘요.
설탕을 넣지 않은 에스프레소를 원할 경우 주문할 때 넣지 말아달라 요청하면 되지만... 에스프레소엔 설탕 꼭 넣어야죠!
설탕의 단맛과 진한 샷이 어우러지면서 흡사 아주 진하고 쌉싸름한 초콜릿을 마시는 듯한 향긋함을 느낄 수 있는
리사르 커피의 에스프레소 샷. 이탈리아 사람들이 왜 아메리카노를 보고 커피를 망쳤다며 화를 내는지
그 이유가 알고 싶다면 여러분도 한 번 설탕 진하게 탄 에스프레소를 마셔보세요.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와 별개로 저는 아메리카노도 좋아합니다.
. . . . . .
명동 온 김에 그 유명한 '델리만쥬 명동 1호점' 도 다시 한 번 방문했습니다.
명동역 개찰구 바로 옆에 위치한 작은 가게로 그 사이 유명해지면서 제가 마지막 방문했던 이후 간판도 바꿨더라고요.
(명동역 델리만쥬 : https://ryunan9903.tistory.com/3009)
간식용 델리만쥬 6개(3,000원) 한 봉지.
바로 구운 걸 내어주기 때문에 아주 뜨겁습니다. 먹을 때 조심해야 해요.
간혹 갓 구운 델리만쥬 먹어보라며 서비스로 하나씩 바로 주거나 더 넣어주는 경우도 있는데 보통 5,000원 이상
구매했을 경우 그렇게 주는 것 같고 가장 작은 단위인 3,000원짜리 주문하면 따로 주진 않는 듯 합니다.
바로 구워져 나온거라 집어들기도 힘들 정도로 뜨겁습니다. 그래도 뜨거운 상태에서 먹어야 진가가 발휘되어요.
엄청나게 진하고 달콤한 크림을 감싸고 있는 빵은 부드러움보다는 '파삭' 하고 씹히는 과자같은 느낌.
그리고 그 안에 퍼지는 달콤함이 폭발하는 크림은 진짜 왜 1호점의 델리만쥬가 특별한지 충분히 납득갈만한 맛.
이 델리만쥬는 정말 갓 구운 걸 바로 먹어야 진가가 발휘됩니다. 명동에 오시면 꼭 먹어보시기 바랍니다.
. . . . . .
리사르 커피에서 에스프레소 샷을 마시긴 했지만 편하게 앉아 이야기나눌 공간이 필요하여 찾은 '스타벅스 별다방점'
사실상 스타벅스의 본점 역할을 하고 있는 매장이라는데, 예전에 한 번 방문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스타벅스 별다방점 방문 : https://ryunan9903.tistory.com/1995)
매장은 리저브 매장으로 운영하고 있고 들어오면 '환영합니다, 별다방입니다' 라고 직원들이 인사를 해 줍니다.
본점이라고 하여 규모가 엄청나게 큰 건 아니고 그냥 일반 리저브 함께하는 스타벅스 매장보다 살짝 더 큰 정도.
오히려 규모 큰 건 근처에 있는 종각역 종로타워점이 훨씬 더 컸던 것 같아요.
커피를 거의 다 마시고 나니 종일 축축하게 내리던 비가 그치고 하늘이 맑아지더군요.
그만큼 엄청나게 습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비 그친 뒤의 맑은 공기는 참 좋았습니다.
. . . . . .
※ 동경우동 찾아가는 길 : 서울지하철 3호선 을지로3가역 3호선 8번출구 하차, 출구 바로 앞에 위치
2024. 8. 7 // by RYUN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