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첫 11일짜리 장기여행, 2023년 11월 타이완 전국일주
(75) 한 손엔 캔맥주, 다른 한 손엔 갓 튀긴 지파이, 루이펑 야시장의 천사지파이(天使雞排-瑞豐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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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대체 무슨 기괴한 혼종이냐...;;
이 근방에 '루이펑 야시장(瑞豐夜市)' 이라는 곳이 있어 찾아왔는데 어... 뭐랄까...
분명 사람들도 좀 있고 상점가도 많긴 한데 '이게 야시장?' 이란 의문이 들 정도로 내가 생각한 그런 가게들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여기도 타이난의 야시장처럼 요일마다 열리는 날이 다른 건가? 그럼 내가 또 잘못 찾은건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그래도 일단 여기까지 왔으니 상점가들이 뭐가 있는지 한 번 둘러보기로 했다.
아, 이 문양은 대한민국 사람으로선 좀 그런데...
참고로 타이완도 대한민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적이 있었지만 그에 대한 감정은 대한민국과 조금 다르다.
타이완의 일제 식민지 시절을 '대만일치시기' 라고 부르는데, 이 시기는 우리나라보다 좀 더 긴 기간인
1895년 4월 17일부터 1945년 10월 25일까지의 약 50년 동안의 역사를 말한다고 한다.
다만 타이완의 경우 독립 이후에도 약 38년간 대만 계엄령의 시기를 겪었기 때문에 대한민국과 달리 일제 강점기에 대한 기억이
조금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적어도 대한민국처럼 그렇게 반감이 심하진... 않았다고 들은 듯 하다.
물론 그게 강점기를 겪은 것에 대한 미화가 되어선 안 되겠지만...
슈퍼마켓이 하나 보이기에 입장.
정확힌 슈퍼마켓이라기보단 슈퍼를 겸하고 있는 일종의 잡화상, 우리나라로 따지면 다이소 같은 느낌의 매장인 듯 하다.
뭐지 이 과자는... 누가 봐도 꽃게랑...;;
사실 여기서 딱히 뭔가 사고 싶은 거라든가 볼 만한 것이 그리 많지 않아 정말 짧게 둘러본 뒤 바로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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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야시장 발견.
이 곳의 야시장은 내가 메인거리를 제대로 찾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지역의 큰 야시장에 비해 상당히 규모가 작다.
야시장이라기보다는 그냥 이런 노점들이 몇 개 옹기종기 모여있는 게 전부인데 설마 이걸 야시장이라 부르는 건 아니겠지...
대략 한 10여 개 정도의 점포가 옹기종기 모여있었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아주 없진 않고 그냥 적당히 있는 편.
그래도 먹거리들이 좀 있어 뭐 있나 살펴본 뒤 한 번 먹어보기로 한다.
아까 전에 우육면 한 그릇을 먹긴 했지만 그것과 이건 별개.
일단 사람들이 꽤 많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 볼까... '스터우빙(石頭餠-석두병)' 이라고 하는 걸 파는 가게인데 이건 대체 뭘까...?
사람이 몰려있는 것도 그렇지만 엄청 고소한 냄새가 나서 거기에 끌린 것도 있다.
부부로 보이는 아저씨와 아주머니 둘이 하는 가게인데 서로 역할 분담이 되어 이 간식을 구워내고 있었다.
스터우빙은 뜨거운 팬 위에 밀가루 반죽을 넣어 구워낸 간식으로 고소하고 바삭바삭한 맛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과자인 오리온 하비스트와 꽤 비슷한 맛이라고 하는데, 여기선 그 과자 속에 다양한 재료를 넣은 바리에이션이 존재한다.
메뉴판을 받아들긴 했는데... 모르겠어...;;
아예 영어 메뉴조차 없는 메뉴판을 받아들면 일단 얼음이 되는데... 한자 공부를 좀 더 많이 할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매번 든다.
마침 근데 내 앞에서 검은깨와 설탕 등을 넣고 굽는 스터우빙이 보이는데 저게 맛있어보여 같은 걸 달라고 했다.
다행히 그렇게 손짓발짓으로 이야기하니 아저씨도 한 방에 알아들어서 OK 사인. 아, 서로 언어는 안 통하지만 뜻은 통하는구나.
스터우빙 안엔 달콤한 재료만 들어가는 줄 알았더니 이렇게 치즈, 고기 등을 넣고 만드는 것도 있었다.
약간 이렇게 만들면 바삭바삭한 딴삥 같은 전병이 될 것 같은데 이건 식사 대용으로도 꽤 괜찮지 않을까? 저거 맛있어 보임...
여튼 막 구워낸 따끈따끈하다 못해 아주 뜨거운 '스터우빙(石頭餠)' 하나를 받았다.
이런 류의 종이 포장지는 따로 생산하는 업체가 있나봐. 첫날 홍두병 먹은 것도 그렇고 비슷한 디자인의 종이 봉투가 꽤 많다.
길거리 와플 정도 크기의 스터우빙. 실제 모양도 와플 구워서 반으로 접은 뒤 그 안에 크림, 잼을 바른 것과 비슷하다.
차이점이라면 와플과 달리 표면이 매끌매끌하고 식감이 과자처럼 바삭바삭하다는 것. 저렇게 들고 위에서부터 베어먹으면 된다.
바삭! 씹히는 과자같은 전병 안엔 참깨과 설탕을 듬뿍 넣은 달콤하고 고소한 소가 한가득.
아, 왜 이게 하비스트와 비슷한 맛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다. 물론 고소함의 정도와 맛은 그 과자완 비교불가 수준이긴 하지만
바삭바삭한 과자,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달콤고소한 참깨소는 진짜 친숙하면서도 굉장히 기분 좋은 맛이 나더라.
뭔가 방향성이 좀 다른... 쫄깃보다는 바삭하고 수분이 적은 중국 호떡을 먹는 느낌이랄까, 여튼 중요한 건 꽤 맛있었다는 것.
가격은 40NT$. 우리돈으로 약 2,100원 정도. 길거리 간식 치고 아주 싼 건 아니지만 그래도 먹어볼 만한 가치 하나는 충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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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가게는 가오슝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꽤 유명한 가게, 바로 '지파이' 전문점이다.
여긴 노점으로 운영하는 게 아닌 번듯한 점포를 두고 운영하는 곳인데 '천사지파이(天使雞排)' 라고 한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걸 반영해서인지 간판 아래 영어, 일본어, 그리고 한국어가 적혀 있는데
타이베이는 몰라도 타이난, 가오슝을 거치며 한국어 간판과 안내가 있는 음식점을 찾은 건 정말 오래간만이라 어찌나 반갑던지;;
포장 전문점으로 규모는 상당히 단촐.
뭐 으레 지파이집들이 다 그렇지만 여기도 먹을 공간이 따로 없어 그냥 사들고 길거리 다니며 먹거나 숙소 가져가서 먹으면 된다.
평소엔 인기가 많은가, 줄 서는 방향 안내도 따로 되어있음.
구매를 할 땐 오른편 파란색 쪽 라인에 줄을 서고 결제를 마친 뒤 제품을 받을 땐 왼쪽 빨간 라인에 줄을 서면 된다고 한다.
뭐 지금같이 사람이 없을 땐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지만...
지파이 외에 국수류, 버섯튀김, 동과차 등의 다른 메뉴도 있지만 아무래도 대표 메뉴는 제일 위에 있는 것,
'엔젤 프라이드 치킨', 즉 지파이다. 가격은 100NT$(약 4,100원).
지파이 하나 주문.
갓 튀긴 큼직한 닭튀김을 꺼낸 뒤 그 위에 후추로 보이는 파우더를 살짝 뿌려준 뒤 종이 봉투에 담으면 완성.
종이 봉투에 담은 지파이를 비닐 봉투에 다시 한 번 담아 건네준다.
비닐봉투 하단에도 한글로 '프라이드 치킨' 이라는 문구가 인쇄되어 있다.
자, 좀 전에 산 캔맥주를 꺼내볼까나~
다행히 가게에서 조금 벗어나면 앉아서 먹을 수 있는 길다란 벤치가 있어 거기 앉아 맥주와 지파이를 까보기로 했다.
사람들 좀 지나다니는데 뭐 어때, 여긴 야시장이고 다들 길거리 돌아다니면서 음식 먹는걸... 맥주 좀 마셔도 괜찮아, 괜찮아.
천사지파이의 튀김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기 쉬운 그 지파이와 살짝 모양이 다른데, 일단 튀김옷이 지파이라기보단
일반적인 후라이드 옛날통닭에 가까울 정도로 상당히 두꺼운 편이다. 물반죽으로 튀김옷 만든 시장치킨같은 느낌.
파삭!!
진짜 튀김옷이 '파삭!' 하고 씹히는데 이 질감, 이 식감 대체 뭐지...? 그리고 입안에 퍼지는 이 고소함과 촉촉함은...??
와, 이거 진짜 맛있는데...!! 그 내가 알고있는 지파이와는 결이 좀 다른데, 두껍게 입혀 튀겨진 저 튀김옷이 장난아니게 맛있다.
튀김옷 자체에 은은하게 간이 되어있는데 이게 단순히 짭짤한 간이 아닌 단맛이 더해진 간이라 그냥 튀김옷 자체가 은은한 단맛,
거기에 안에 들어있는 닭가슴살은 두께에 비해 퍽퍽하지 않고 굉장히 촉촉하게 씹혀 와 이거 진짜 맥주도둑 그 자체...
좀 더 매콤하게 즐기라고 매운 양념 파우더를 두 개 넣어줬는데, 먹다가 맛의 변화를 주고 싶을 때 뿌려먹으면 좋다고 한다.
절반 정도 먹어치운 시점에서 두 개의 파우더 중 하나만 뿌려 먹어보았는데 매운맛보다는 짭짤한 맛이 좀 더 강한 느낌.
우리나라의 매운맛처럼 막 입에서 불이 나는 얼얼한 매운맛이 아닌 살짝 향신료맛이 가미된 계열의 매운맛이라
상당히 흥미있는 맛의 변화가 만들어졌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맛볼 수 없는 독특한 풍미가 가미되어 꽤 신선했다고 봐야 할까.
다만 개인적인 취향은 저 파우더를 뿌리지 않고 그냥 튀겨낸 그 자체로 즐기는 것이 좀 더 낫다고 생각한다.
'지파이' 라는 음식의 새로운 방향성을 알게 된 가오슝 루이펑 야시장의 '천사지파이(天使雞排)'
이 맛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날은 무덥고 땀은 뻘뻘 나지만 맥주 한 캔 들어가 살짝 알딸딸한 상태로
기분이 상당히 좋아져서 즐겁게 발걸음을 돌릴 수 있었다.
뭐 야시장 제대로 못 보면 어때, 이 맛있는 거 먹었으면 그걸로 된 거지.
※ 천사지파이 루이펑야시장점(天使雞排-瑞豐店) 구글지도 링크 : https://maps.app.goo.gl/DPosBKJ88dHSHsUL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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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9. 14 // by RYUN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