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비롯하여 2000년대에 아케이드 리듬게임을 즐겨하셨던 분들이라면 누구든 '조이플라자' 란 게임장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서울 압구정동, 지금의 '압구정로데오역' 근처에 위치한 아케이드 게임센터로 국내엔 정식 발매되지 않던 직수입 리듬게임을
이것저것 가져와 유일하게 돌렸던 곳으로 유명한데 그 때문에 아케이드 리듬게이머들에게는 거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었지요.
그 조이플라자 게임센터 바로 옆건물에는 중화요리 전문점이 하나 있었어요. '호화반점' 이라고 하는 이름만 들어도 비싸보이는 집.
당시에는 압구정 하면 그냥 물가 비싸고 음식값 비싼 동네라는 인식이 있어 여기서 맥도날드나 비재즈 이외에 밥을 먹는다는 건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고 그 때문에 그 옆에 있는 중화요릿집 호화반점도 분명 비싼 집일거야... 라고 생각하며 잘 안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여길 가더라도 가장 가격 싼 짜장면만 먹었지 다른 메뉴는 못 먹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리고 세월이 지나... 조이플라자가 없어진 지 10년이 훌쩍 넘었고... 이 호화반점도 원래의 위치에서 살짝 이전하여...
물론 그래봤자 도보로 한 1분 정도 떨어진 곳으로 이전하여 새롭게 개업을 했는데, 문득 한 번 가 보고 싶단 생각이 크게 들었거든요,
그래서 어느 날 저녁, 주변 친구 두 명과 함께 셋이서 방문해 보았습니다.
가게는 1층과 2층, 두 개 층이 있는데 식사 테이블은 2층에 좀 더 많이 있습니다.
식기류, 그리고 양념통에 들은 건 간장과 식초.
앞접시 포함, 기본 식기 준비 끝.
식사 및 주류 메뉴.
뒷페이지에는 요리메뉴가 있는데, 지금 보니 식사메뉴는 그렇게 비싸지 않고 요리가 살짝 비싼 편이네요.
옛날 게임센터 다니던 시절엔 마냥 다 비싸보였는데 워낙 다른 곳 물가도 많이 올라 이제 식사 가격은 고만고만하게 느껴졌습니다.
기본찬은 춘장과 단무지, 양파.
메인 식사 나오기 전, 요리로 주문한 '찹쌀탕수육(27,000원)'
어떤 식으로 나오는지 궁금했는데 꿔바로우 스타일로 제공되더군요. 소스가 좀 짙은 색을 띠는데 복분자 소스라고 합니다.
찹쌀탕수육과 함께 양상추 샐러드가 담겨 나오는데 샐러드 위에 특이하게 콘플레이크를 조금 얹어 내어줍니다.
가위 갖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준 뒤 즐기면 됩니다.
질감이라든가 소스 코팅된 건 일반적인 꿔바로우와 매우 유사. 복분자를 넣은 소스라 소스 색은 좀 더 진한 편.
안에는 부드럽게 씹히는 돼지고기 살코기와 함께 쫀뜩한 떡과 같은 튀김옷의 식감이 기분 좋게 어우러지는 맛.
복분자를 넣어 일반적인 꿔바로우의 새콤함과는 살짝 다른 방향의 진한 베리향이 꽤 좋더라고요. 이거 꽤 이색적이고 맛도 좋아요.
이렇게 양상추와 함께 먹으면 아삭아삭 더 맛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양상추 같이 주는 거엔 이유가 다 있었구나...!!
함께 간 친구가 주문한 '우육탕면(11,000원)'
타이완 풍 우육면이라기보다는 중화요리 전문점에서 나오는 살짝 걸쭉한 국물의 우육탕면에 좀 더 가까운 느낌.
국물만 살짝 맛봤는데 맵지 않고 적당히 진한 국물이 요즘같이 추운 겨울철에 먹기 딱 좋은 맛이었습니다.
저는 '잡채밥(10,000원)' 이 꽤 맛있어보여 이 쪽을 선택.
음식 나오는 비주얼 보고 '아, 이게 정답 맞았다!' 라고 바로 직감.
밥을 시켰기 때문에 짬뽕국물 한 그릇이 함께 나옵니다.
뭐 진짜 잘 하는 중화요릿집에선 짬뽕국물 대신 계란국 준다, 그런 거 신경 안 써요. 솔직히 저는 짬뽕국물이 더 맛있음(...)
밥과 함께 나오는 짬뽕국물, 꽤 괜찮습니다. 건더기로 죽순도 들어있고 나름 갖출 건 잘 갖추었다는 느낌.
잡채 안에 들어있는 밥과 먹기좋게 잘 비벼서...
여기 잡채밥 기대 이상으로 맛있는데요...?
아주 옛날...까진 아니어도 한 10여년 전쯤, 한참 연희동에 꽃혀 연희동에 있는 '류' 라는 중식당 가서 잡채밥 먹은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먹었던 잡채밥 이후 이렇게 맛있는 잡채밥은 거의 처음 먹어보는 것 같습니다.
당면 들어간 잡채인데 당면이 전혀 거슬리지 않게 탱글탱글하게 씹히고 야채, 고기의 불향도 아주 잘 살아있습니다.
그냥 내 기억 속의 호화반점은 게임센터 옆에 있는 좀 비싼 중화요릿집이란 이미지였는데 여기 이렇게 맛있는 데였어...?
음식 먹어보고 살짝 놀랐습니다. 어쨌든 기본 이상, 아니 꽤 잘 하는 집이란 걸 잡채밥을 통해 알 수 있었어요.
식사 아주 맛있게 잘 했습니다.
돈이 없어 어쩌다 한 번 갔을 때도 짜장면만 먹었던 과거의 나를 회상하며... 이젠 이런 거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짜장면, 짬뽕, 볶음밥 이외의 다른 식사는 감히 도전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는데, 이젠 잡채밥도 먹는 어른이 되었으니...
지금은 크리스마스가 끝나고 연말이 되었지만, 제가 방문했을 땐 한창 크리스마스 전 시즌이라 입구에 트리도 하나 있었습니다.
가게 위치는 한 번 옮겼지만 옛날 호화반점 시절의 간판은 그대로 남아있더라고요.
정확힌 간판도 새로 만든 거지만 옛날 자리에 있던 호화반점의 간판 디자인을 그대로 재현하여 새롭게 만든 것.
그래서 위치가 바뀌었음에도 이 간판만으로 '아, 호화반점이다!' 라는 걸 한 번에 알 수 있습니다. 또 그 때를 추억할 수도 있고요.
기억 속에 있던 중화요리 전문점, '호화반점' 에서의 저녁식사.
비록 조이플라자 게임센터는 이미 추억 속으로 사라진 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그 기억만큼은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어
그 게임센터를 함께 기억하는 사람들과 가끔 한 번씩 이야기 꺼내며 추억을 되새겨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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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화반점 찾아가는 길 : 지하철 수인분당선 압구정로데오역 5번출구 하차 후 바로 뒤로 돌아 첫 번째 골목에서 좌회전
2024. 12. 29 // by RYUN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