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11 타이완, 타이베이(台湾, 台北)>
(11) 사라진 권위주의, 진실된 역사을 기록하는 공간으로 변화하는 '국립중정기념당(國立中正紀念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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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타이베이 메인역.
타이베이 여행을 한다면 어떻게든 한 번은 만나고 또 이용하게 되는 곳.

아침 일정을 시작하기 전, 내일 기차 타는 일정이 있어 표 좀 미리 사놓으러 역 안으로 들어간다.
생각해보니 타이베이역을 지하 대합실로 들어가본 적은 있어도 지상으로 들어가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 넓어...! 여기 이런 곳이었어?
대부분의 역무시설이 지하에 몰려있고 승강장도 지하에 있다고 해서 지상의 저 큰 건물은 어떻게 활용하는 건가 궁금했는데
저 커다란 건물의 실내는 거대한 광장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1층에도 매표소가 한 쪽에 마련되어 있음.
왼쪽은 유인 매표로, 오른쪽은 자동발매기. 그리고 자동발매기 위에 '타이베이 메인역' 한자 역명판이 있다.
타이베이 메인역은 왜 특유의 한자 역명판이 없는걸까 하며 늘 생각했었는데 그게 여기 숨어있었다.

실내 1~2층은 상점가, 그리고 그 윗층은 타이완철도(TRA)의 본사가 들어와있다고 한다.

어쨌든 여기서 내일 탈 기차표를 예매한 뒤 다시 지하철로 이동.
타이베이역의 지하철은 단수이신이선, 반난선, 두 개 노선이 만난다.

오늘 여행의 시작은 외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주요 간선 노선인 '단수이신이선(淡水信義線)'

열차 타고 두 정거장 이동, 중정기념당역(中正紀念堂)에서 하차.

천장이 넓게 뚫려있어 에스컬레이터로 대합실 올라오면 탁 트인 역사 풍경을 볼 수 있다.
왼쪽은 단수이신이선 단수이행, 오른쪽은 쑹산신뎬선 쑹산행. 이렇게 두 노선이 한 승강장에서 만나는 평면환승역 구조.

출구 쪾에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애들이 엄청 많이 모여있는데, 무슨 체험학습이 있는 건가?

어쨌든 이 친구들을 데리고 중정기념당(中正紀念堂)에 왔다.
정식 명칭은 '국립중정기념당(國立中正紀念堂)' 으로 타이완으로 국부천대를 한 초대 총동인 장제스(蔣介石-장개석)의 기념관.
여기는 타이완 여행을 할 때마다 항상 한 번씩 온 곳이라 굳이 더 설명을 할 필요가 없어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메인 홀 4층의 장제스 동상.
그런데 여기 오면 항상 보여야 할 무언가가 사라진 걸 확인.
동상 앞을 지키고 있는 보초병이 사라졌어...!

어디로 간 걸까 주변 두리번거리다 광장 쪽을 내려다봤는데, 저기 광장 계단 앞에 사람들이 모여있네?
저건 대체 뭐지?

그렇다.
2023년 방문 이후 1년 사이 의장대 행사가 바뀌었음.
과거엔 장제스의 동상 앞에서 두 명의 보초병이 계속 보초를 서고 있었고 매시 정각마다 후임 의장대 보초병들이 들어와
그 앞에서 교대식을 벌이곤 했었는데, 1시간동안 지키는 보초병들을 없앤 뒤 장제스 동상 앞이 아닌
건물 앞 민주광장에서 1시간마다 한 번씩 의장대의 순찰 및 사열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제 건물 안에서 보던 교대식은 없고 대신 이렇게 광장 앞에서 행사를 진행.
그래서 기존 건물 안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전부 광장 아래로 내려와 행사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의장대 도착.

이제 보초를 서는사람이 없어져서 교대식의 의미는 없지만 몇 명이 나와 사열을 하는 모습은 예전과 동일하다.
바뀐 게 있다면 예전엔 장제스 동상을 향해 경례를 하는 퍼포먼스가 있었으나 이제는 그게 사라졌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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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대식을 하던 때와 비슷한 분위기.
그래도 이제 한 시간에 한 번씩 이것만 하면 되고 한 시간동안 서서 지키는 것이 없어졌으니 이들에게도 훨씬 편하지 않을까?

교대식이 이렇게 간략화된 것은 지난 2024년, 타이완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방침이 바뀐 것이라고 한다.
작년 총통(대통령) 선거가 있었는데 이 때 당선된 민주진보당의 '라이칭더(賴清德)' 16대 총통의 정책으로 변경된 것이라고 함.
라이칭더 현 총통은 직전 차이잉원 총통과 마찬가지로 민주진보당 소속인데, 역대 총통 중 천수이볜 총통 다음으로
타이완 독립에 적극적인 성향을 띠고 굉장히 진보적인 인물이라고 한다. 그 정치 성향의 영향이 중정기념당에도 반영된 듯.

그래서인지 실내에 전시되어 있는 전시 공간도 예전에 비해 분위기가 꽤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유중국.
한때 현재의 중국과 수교 전, 그러니까 중국을 '중공(중국공산당)' 이라 부르던 시절, 타이완을 '자유중국' 이라 불렀던 적이 있다.
지금도 6~70년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타이완, 대만보다 자유중국이 좀 더 익숙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장제스에 대한 기본적인 상설 전시는 그대로 유지되어 있고...

장제스의 집무실과 그의 마네킹이 진열되어 있는 것도 예전에 왔던 것과 동일하지만...

중정기념당에는 아마 역대 최초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새로운 특별 전시관이 생겼다.
이건 분명 작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이다.

사람의 머리가 거꾸로 매달려 있고 그 머리에 엄청나게 많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1945~1949년, 대만 언론의 이동과 4·6 사건(1945~1949年 臺灣媒體流動與四六事件)'

과거 중화민국이 국공내전을 통해 타이완으로 이주한 이후, 그리고 장제스가 초대 총통으로 재위하던 기간에 있었던
수많은 탄압과 학살 등을 기록해놓은 것으로 보인다. 흑백 사진으로 사진을 들고있는 수많은 타이완 시민들과...

과거의 학살을 표현한 듯한 벽화.




모든 전시물들이 과거의 어두웠던 역사들을 다루고 또 고발하는 내용들.
숨기고 싶을 수 있던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장제스를 기념하는 중정기념당에서 전시를 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파격적이고
이런 파격적인 전시가 가능했던 것도 현재 정부가 바뀌었기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100%의 자유를 쟁취하자 - 정난룽(爭取 100% 自由 — 鄭南榕)'
《자유시대》잡지는 《자유중국》 정간 이후의 공백을 메우는 존재로, 출판인의 표현 자유에 대한 의지를 담고 있었다.
편집장 정난룽(鄭南榕) 은 1988년 12월 10일 세계 인권의 날에 “대만 독립 헌법 초안” 전문을 발표하며,
《자유시대》 제101호를 통해 '대만 독립'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공식적으로 실명 출판했다.
이 일로 그는 1989년 1월 21일 ‘내란예비죄’로 기소되었다. 정난룽은 언론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재판에 출석하지 않고,
편집실에 틀어박혀 출동한 검찰과 경찰에 저항했다. 4월 7일, 그는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 분신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향년 42세였다.
그는 1984년부터 《자유시대》를 발행하면서, 점점 대만 사회의 금기와 마주하게 되었고, '표현의 자유'를 일관되게 주장했다.
그는 "100% 자유"를 주장하며, “민주주의의 기초는 바로 표현의 자유다. 표현의 자유가 없다면, 투표도 무의미하다”고 했다.
정난룽은 이념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했고, 그의 분신은 대만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4월 7일은 이후
“표현 자유의 날”로 기념되었고, 그의 묘역은 정난룽 기념공원으로 조성되었다.
정난룽의 친구와 동료, 후배들은 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정난룽기념회”를 조직했고, 다양한 사회운동과 출판활동을 이어가며,
대만 사회에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지속적으로 알려왔다.
그는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절대 스스로 목숨을 끊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위해 죽어야 한다면, 나는 마다하지 않겠다.”
이 말은 그의 생애와 죽음을 모두 요약해 주는 강렬한 선언이었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가슴에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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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공간에는 과거 그가 분신자살로 목숨을 끊었던 불탄 방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었고...

조금 섬뜩할 수 있지만 불탄 시신의 모습을 본뜬 마네킹도 만들어져 있었다.
중정기념당은 이번이 몇 번째일지도 모를 여러 번 방문한 곳이지만, 이런 기획 전시를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뭐랄까 그동안 타이완이 감추고자 했던 자국의 아픈 역사를 그대로 드러내고 상처를 치유하려는 모습이 보여졌기 때문에
이 전시가 불편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이들도 우리와 비슷한 역사를 갖고 있구나' 하는 동병상련의 감정이 느껴졌던 건 왜일까...
= Continue =
2025. 5. 20 // by RYUNAN